203호 할머니는 슬하에 9남매를 두었다. 남편은 26년 전 폐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시간은 잘도 흘렀다. 처음 얼마간은 적적함이 익숙지 않아 밤이 두려운 날도 있었으나 어떻게든 시간은 갔고 자식들은 진작부터 곁을 떠나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을 비쳤다. 그러나 모든 자식들이 한결 같이 할머니에게 다정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장례식에 들어온 부의금 때문에 자식들 사이에 금이 가면서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출가외인으로 취급받던 딸들은 어차피 부의금에 대해 한마디 언급조차 못할 시절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싹트기 시작한다. 발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둘째 아들이 부의금 봉투를 말도 없이 가지고 가버린 것이다. 할아버지가 쇠약해지면서 그나마 보리쌀이라도 맘껏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와 셋째 아들의 고생이 컸기 때문에 첫째 아들 입장에서는 화가 치밀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동네의 보리탈곡은 거의 다 맡아해 가며 밤이고 낮이고 일했다. 어떻게든 기울어진 가세를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천성이 한량 같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다. 그러니 부의금 봉투가 사라진 그날부터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을 끊고 살았다. 말이 많고 좀스러운 구석이 있는 넷째는 손바닥만 한 전답 한 필지를 주기 전에는 혼자 사는 할머니를 지극히 챙겼다. 그러나 그 손바닥만 한 필지의 명의가 넷째 아들 이름으로 옮겨 가자 단번에 왕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 년에 두 번 명절에만 얼굴을 보이다 몇 년 전부터는 아예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가까운 데서 농사를 지으며 종종 얼굴을 보는 셋째 아들을 제외하고 그나마 할머니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건 막내아들이었다. 인정은 많으나 야무지지 못하고 선유하기만 한 막내아들은 그 성정 탓에 늘 가난을 면치 못했다. 그런 막내아들이 늘 마음에 걸린 할머니는 마당과 본채가 있는 꽤 넓은 집터 자리를 다른 자식들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덜컥 막내아들 앞으로 이전해버렸다. 집터 자리는 장남을 준다는 관습을 할머니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할머니의 눈엔 과거의 고생으로 이룬 첫째 아들의 재산이 합당하지 않았다. 집 나간 며느리 대신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막내아들은 어쨌거나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미 잘살고 있는 첫째 아들에게 집조차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할머니가 여든일곱이 되던 해에 뒤꼍에서 넘어져 크게 다친 것을 계기로 할머니를 모시고 같이 살 자식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할머니는 첫째 아들과 셋째 아들, 막내딸 집을 유령처럼 떠돌다가 결국 어느 요양병원 203호실에 터를 잡았다. 95세의 할머니는 쓰러진 고목나무처럼 하루 종일 누워 조용히 잠만 잔다. 가죽과 뼈만 남은 앙상한 두 다리는 이미 제 역할을 잃은 지 오래고 깔깔한 입맛에 겨우 곡기만 조금씩 먹으며 연명하듯 남은 생을 살아가고 있다.
요양병원 203호 할머니는 나의 할머니다.
햇살이 다사로운 봄, 할머니 댁에 가면 군데군데 옹이가 팬 작은 마루가 나를 기다리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녀를 마치 어제 보았던 듯 그을린 검은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손을 들어 어서 오라 손짓하셨다. 그 손짓은 계절이 바뀌듯 느린 속도였지만 손끝에서 느껴지는 애틋함은 어느 계절이든 늘 똑같았다. 배고팠던 나를 위해 낡은 개다리소반 위에 차려주신 유난히 도톰했던 기름에 자글자글 부쳐내 온 계란 두 개를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날씨가 추워지니 아랫목처럼 뭉근했던 할머니의 온기가 유난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