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7-2021.05.13
눈 덮인 세상은 어쩌면 공간의 특성을 지워내고 인간 그 자체만을 조명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노스다코타 주 파고에 있는 킹 오브 클럽, 가정집들과 숙박업소 등 구체적인 지명과 장소들 사이에 문득 끼어든 황량한 설원의 이미지들이 인상적이다. 절제와 표출을 오가면서 극의 텐션을 조절하는 영화의 작법 또한 흥미롭다. 우리는 살면서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전혀 설명할 수 없기도 하고,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하루 종일 읊을 수도 있기도 하다. 코엔 형제의 현실감은 이처럼 치밀한 인과관계가 사라진 자리에 불확실한 가능성들과 충동의 선택들이 자리할 때 피어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건의 표층부 어딘가만을 싱겁게 훑고 있는 밋밋한 스릴러일 수 있지만, 수많은 관계의 역학들과 돈을 매개로 꿰어내는 인간 내면 심리 등 다양한 층위에서 접근이 가능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석헌의 초능력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 이제라도 가장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애달픈 몸부림에서 시작한 미약한 잔재주가 대기업과 언론, 공권력을 끌어들이는 심오한 염력으로 탈바꿈한다. 영화 속엔 종종 흥미로운 순간들이 있다. 사람들은 촬영된 영상 속에 버젓이 등장하는 석헌의 초능력(조작되지 않은)을 직접 보면서도 의아해 한다. 이데올로기나 거대 담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그저 소박한 마음만을 드러내는 석헌을 통해서 현실의 부조리들이 더욱 대비되기도 한다. 몇몇의 눈에 띄는 지점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극의 리듬이 거슬린다. 적재적소에 찔렀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나서야 뒤늦게 장르적인 쾌감을 유도하는 등 전반적으로 몰입하기 어려운 부조화들이 흩어져 있다.
유년 시절 촬영했던 영상들을 재구성하여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낸다. 성년이 된 이후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일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휘발되지 않는 영상들에는 그 시절의 생생한 질감이 고스란히 담겨있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이 묘한 부조화, 그러니까 과거의 영상에 덧입히는 현재의 내레이션과 과거에 불연속적으로 들러붙는 새로 촬영한 영상들 그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 파편화된 기억들의 늪에서, 영상을 보고 건져올린 그때의 감정과 느낌은 현재의 자신을 반영하는 무언가로 인해 변형되지 않는가. 개인적인 경험과 공적인 매체 영상들, 이웃이 촬영한 자료를 뒤섞는 감독의 재배치로 인해 소재를 향한 비판적 묘사의 결이 신비롭게 가공된다. 내가 겪었던 일들, 진짜로 위험에 처한 상황들,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 뻔뻔한 정부의 만행, 잊힌 주변인과 가족들이 불규칙하게 기억을 맴돈다. 재난을 촉발했던 사회 문제에 관한 고발적 태도를 유지하려는 열의보다는 재난 이후 남겨진 채 계속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감독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한 나날들이 지속되다가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리는 게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광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야구가 내 전부인데, 야구만 해왔고 야구만 하면서 살 건데, 왜 세상은 내가 야구를 못 하게 만드는 건가.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따져 보는 건 이미 중요한 작업이 아니다. 그저 묵묵히, 꿋꿋하게 아웃되지 않기 위해 버텨야 한다. 버티다 버티다 못해 쌓여 왔던 응어리를 뱉어내는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이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니까, 영화는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가는 아버지와 광호를 담은 뒤에, 구보를 뛰는 광호의 모습을 잡으며 끝난다. 그 움직임 자체가 우리들의 삶이다.
표면적으로는 국가적 위기를 다루고 있지만, 어쩐지 영화의 관심사는 두 사람의 연대와 우정을 표출하는 일이다. 후반부 플래시백이 이를 아주 간명하게 드러낸다. 문제는 두 남자의 끈끈한 관계를 지탱하는 요소가 두 주연 배우의 호연과 상투적인 대사들 정도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건조한 실화 기반 서사를 의식하여 스타일을 나름대로 가공하고, 첩보 스릴러의 작법을 얹고, 거기에다가 다소 비트는 전략으로 두 사람의 연결을 강조하는 극적인 요소를 더하지만 어쩐지 심심하게만 흘러가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고요하고 우아한 물 대신에 활활 타는 불의 이미지가 담긴 텍스트를 접했다. 삽시간에 울창한 산림을 집어삼키며 번져나가는 불길 앞에서 인간은 오로지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불을 매개로 자연과 인간을 대비하는 듯한 접근은 흥미를 유발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흥미로운 연결고리 외에는 도무지 매력을 느낄 만한 포인트가 없다. 광활한 자연에 스며든 시골 마을, 소방 구조 대원들의 산림 관리 및 화재 진압과 그와 얽힌 재난 등의 요소를 활용해 소재를 엮어내고 있지만 어쩐지 이 모든 것들이 그냥 불의 이미지를 내세우기 위한 알량한 수단으로만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게다가 영화가 인물을 대하는 시선이 일관성이 없다. 주요 인물을 보듬어줄지 내버려 둘 지 갈팡질팡하는 느낌이라 굉장히 산만하게 느껴졌다. 현실감 넘치는 묘사들처럼 단편적으로는 눈길을 끄는 이미지들이 종종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화에 도발적으로 덕지덕지 들러붙은 메타포들이 제법 흥미롭다. 인류의 기원 혹은 창조 신화를 경유하는 각종 종교적인 설정들, 질문을 남기려는 장치들이 감독의 지휘 아래 치밀하게 기획되었지만 어쩐지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오묘한 기분이 든다. 직설적이고 폭력적인 관념들과 이미지가 나열되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한편 설화 속 물의 정령을 현대 베를린에 소환했던 크리스티안 펫졸드의 <운디네>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영화도 오래전부터 있던 성경 속 창세기를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에 접목시키지 않았나.
사실 메타포니 창세기니 이런 이야기를 차치하고 보는 편이 영화를 조금 더 순수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적막한 우주선에는 몬티와 그의 딸만 남아 있다. 플래시백으로 들여다본 지난 일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뒤틀린 욕망이 뒤얽혀 발현되는 순간들을 조명한다. 사회적 낙오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나름의 체계와 질서 속에서 또 하나의 폐쇄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들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아웃사이더들의 서사, 끝내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무질서의 늪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전주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