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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플레 Aug 20. 2021

<인질> (필감성, 2021)

리얼리티의 극대화를 위해 배우가 자신을 연기하게 만드는 영화. 이 기획의 초점은 오로지 현실감에 맞춰진 듯 보인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영화에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겠다는 의지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영화는 일부러 그 의지를 버리고자 한다. 대신 영화가 선택하는 건 현실감을 곱씹을 수 있는 구간들을 번뜩이는 영화적 체험으로 가공하는 일이다. 이 선택은 곧 영화의 정체성을 재단하며, 더 나아가 이 영화의 매력을 형상화한다. 여기까진 괜찮아 보일지 모르겠으나, 이 영화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매력을 발산해야 할지 고뇌하다가 결국 아쉬운 길로 접어들고야 만다.


황정민이 극 중 납치범들에게 잡혀 스마트폰 속 동영상을 확인하는 신이 있다. 이때 영화는 휴대폰 속의 영상을 바라보는 황정민의 모습을 핸드헬드로 포착하는 쇼트 대신 재생되는 영상 자체를 관객에게 독립적인 쇼트로 제공한다. 즉, 관객이 이 순간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영화의 설계 하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관객은 두려움과 쇼크로 둘러싸인 황정민의 모습 말고, 영상 속 내용이 전해주는 끔찍함에 몰입할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장면의 연결로 인해 실제 현실에 손길을 건네는 영화의 사실성에 균열이 간다. 즉, 영화 속 황정민은 실제 인물처럼 보이지만, 결국 황정민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도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스마트폰 속 영상이 관객한테 독립적으로 제시되는 순간, 관객은 실제 황정민이 잡혔다는 데서 오는 사실감보다도, 제시되는 상황 자체를 음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인질>은 황정민을 본인으로 등장시킨다. 톱스타 황정민이 실제로 의문의 괴한에게 납치가 되는 아찔한 상황을 실감 나게 연출하기 위해서 황정민과 박성웅을 제외한 주요 인물들을 전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로 캐스팅했으며, 황정민과 박성웅은 함께 출연했던 영화 <신세계>를 연상시키는 대사로 현실감을 환기한다. 황정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부당거래>와 <베테랑>을 서사적 연료로 활용하는 구간 또한 존재한다. 현실을 영화에 편입시키려는 이러한 순간들은 모두 철저하게 도구로만 쓰인다. 즉, 이 요소들은 <인질>이라는 영화의 각본을 굴러가게 만드는 윤활유처럼만 활용될 뿐이다. 그러니까 <인질>은 철저히 영화처럼 보이길 원하는 영화다. <인질>에는 황정민의 하루를 밀도 있게 취재하려는 다큐멘터리의 작법도 없고, 황정민의 소탈한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유튜브 영상의 질감도 없다. 오해할까 싶어 다시 짚고 넘어간다. 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전혀 아니다. 이 영화는 배우 황정민이 뿜어내는 리얼리티를 영화 자체의 핍진성을 확보하는 데에만 얄팍하게 소비할 뿐이다. 따라서 황정민이 다른 누구로 대체되든 유사한 결과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만 예상치 못한 만족감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후반부 처절한 액션 신에서 황정민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몸짓에 그간 그가 출연해 왔던 배역(형사 역할 등)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가 반영이 되어 있을까 싶은 궁금증이 피어났다. 물론 해당 신은 무술 감독 및 액션 연출부와 잘 협의하고 연구한 끝에 나온 장면이겠지만, 어쩐지 배우 황정민이 뿜어내는 리얼리티(그의 연기 경력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영화의 설정이나 연출 및 기획 등보다도 자연스럽게 나의 몰입을 도와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인질>이 애당초 의도했던 바와는 거리가 있는 나만의 돌출된 감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구간에서 감독은 그저 처절한 싸움 끝에 황정민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서사의 한자락만을 담아내려고 했을 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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