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0-2021.09.16
<예언자>를 손쉽게 요약하자면 어수룩한 소년이 감옥이라는 대체 사회의 법칙을 습득하고 다양한 상황에 적응해가며 범죄계 거물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된다. 소년은 감옥에서 인생을 배운 걸까. 하지만 <예언자>는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해선 안 될 영화처럼 느껴진다. 기대감을 교묘하게 배반하는 영화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고, 그만큼 이 영화는 전형적인 질감 속에서 비정형의 몸부림을 표상하려고 든다. 예지몽을 꾸는 듯한 장면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등장하고, 죽였던 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령처럼 주인공의 곁을 맴돌고 있다. 오이디푸스와 같은 신화적 모티프, 종교를 동원한 해석을 곁들이는 시도는 분명히 이 영화와 부합하지만, 나는 어쩐지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저런 인문학적 경유를 통한 독해가 아닌 잠재된 어긋남을 응시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인종과 종교가 혼합된 폭력 사회에서 분열과 봉합을 거듭하는 군상극인 <예언자>는 최근 본 영화 가운데 가장 난감한 인상을 심어준 영화가 되었다.
실화를 극영화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있어서 베넷 밀러의 영화는 내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이 느낌은 마치 핀처의 <조디악>을 보고 났을 때와 흡사했다. <폭스캐처>는 충격적인 사건의 이면을 들춰내려고 하지 않는다. 애초에 영화는 '그날의 진실'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현실 질료를 옮겨 와 세상과 접속을 시도하는 많은 영화들이 있다. 하지만 <폭스캐처>는, 아니 정확히 말해 <카포티>와 <머니볼>을 연출하기도 한 이 영화의 감독 베넷 밀러는 영화와 현실 사이에는 반드시 불투명한 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손시내 평론가가 쓴 밀러의 장편 세 편에 관한 작가론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밀러의 다른 작품 또한 깊게 음미해보고 싶다.
배트맨의 탄생 과정을 과감히 덜어냈음에도 서사 전개에 있어 흥미를 유발하는 구간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극에 생기를 불어넣는 몇몇 구간들이 있다. 조커와 그의 일당이 박물관을 어지럽히는 신, 퍼레이드 신 등이 그렇다. 한편 느와르와 만화책의 질감을 함께 배합해 만들어낸 세계관의 모습은 분명 매혹적이다. 또한 주인공은 비밀을 간직한 채 배제와 소외를 겪었던 자신의 삶에 조소를 날리며 고독을 씹고 있다. 이 역시 감독의 세계관 속에서 에드워드나 윌리 웡카 등의 다른 존재들과 공명하는 팀 버튼식 인물이다. 난 이 감독의 미장센보다도 그런 인물 유형이 좋다. 결국 <배트맨>은 <비틀쥬스>와 함께 팀 버튼 스타일로 묶일 수 있으므로 감독의 이후 작품들과 같은 맥락 안에서 유기성을 획득한다. 상업적인 기획이 다분한 코믹스 원작 히어로 장르에서조차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뚝심이 지금 와서 보니 새삼 대단해 보인다.
팀 버튼은 배트맨을 영웅으로 그려내지 않고 자신을 투영한 존재로 가공한다. 펭귄과 셀리나 또한 빌런 혹은 사이드킥 등 영웅 서사 속 기능적 존재들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감독은 역시 이들에게도 자신의 인장을 새겨 넣는다. 이 영화에선 특히 서사의 밋밋함을 상쇄하고도 남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저글링이 인상 깊게 느껴졌다. 양가적 면모를 가진 이들은 주변 혹은 사회와의 소통에 있어 각자의 시행착오를 겪는다. 브루스는 자신과 유사한 존재를 마침내 마주한 뒤 가면을 벗어던지고, 셀리나는 무의식과 심연에서 건져올린 자아로 인해 자신의 양면성을 감지하게 된다. 펭귄 역시 방황과 혼동의 소용돌이에 잠시 휘말리지만 끝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영화 속에 산재한 상징과 모티프는 인물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안되어 있으며, 과하다는 인상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채 매력적인 팀 버튼 월드의 요소들로 기능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