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영화
2021.01.08-2021.01.14
<트랜짓(Transit)> (크리스티안 펫졸드, 2018)
정착하지 못해, 아니 정착할 수 없어 떠도는 자들의 사연이 펼쳐진다. 관객은 제삼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몰입하기보다는, 이를 타자화할 명분을 얻는다. 가게의 종업원은 게오르그에게 전해 들은 자신과 무관한 사연을 말하는데, 이때 외부자에 의해 전개되는 내레이션은 인물의 심리를 자세히 묘사한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의 관습적인 인식 체계를 자극하게 된다. 중심인물의 내면을 잡아내려는 클로즈업과 외부인의 내레이션이 공존하는 기이한 광경을 두고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영화는 관객에게 몰입보다는 이화(異化)를 촉구한다.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경유하는 영화의 서사는 그 시공간적 배경부터 완전한 몰입을 보장하는 대신 생경함을 심어준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과거의 흔적을 병치하는 감독의 기묘한 접근법이 특히 눈에 띈다. 게다가 게오르그는 죽은 이를 가장하여 두 존재를 모두 점유하는 모호함을 안고 있고, 마리는 유령처럼 게오르그의 시야에 흔적을 남긴다. 특정 논리의 귀결로 재단되길 거부하는 영화의 독특한 고집은 서사 측면에서도, 형식적 기법에도 역시 반영되어 있다. 이를 통해 포착할 수 있는 건 아마도 각각의 영화적 요소가 머금고 있는 신비한 다변성이다.
전쟁으로 얼룩진 자국(독일)의 역사에 기대어 영화를 풀어내는 펫졸드는 어쩌면 이 작품이 특정 관점 아래 잠식당하길 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 <트랜짓>에서 주요하게 포착되는 모호함, 아니 영화를 어렴풋이 감싸는 모호한 기운 자체를 떠올려 보면 무정형성에 가까운 잔상만이 영화의 소재를 슬며시 드러낼 뿐이다. 재밌게도 그의 최신작 <운디네(Undine)>(2020) 역시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의 무형적 면모를 유려하게 활용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트랜짓>과 맞닿아 있다.
<프란츠(Frantz)> (프랑수아 오종, 2016)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죽음의 기운만이 도사리고 있다. 생존자는 슬픔과 공허를 애써 감추려고 해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죽음은 살아 있는 자를 방황하도록 부추긴다. 감독은 화면의 채도를 빼서 남겨진 자들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한편 영화 속에서 색채가 복원되는 순간을 가만히 살피면 어떤 의미로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한 아드리앙의 사연이 담긴 플래시백도, 새로운 관계를 암시하는 두 남녀의 나들이도, 안나의 부모님에게 힘이 되어주는 아드리앙의 연주도, 마지막 마네의 그림을 응시하는 안나의 모습이 모두 그렇다.
P.S. 안나 역의 파울라 베어는 이 영화에서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제작 당시의 실제 나이와 괴리가 느껴지는 원숙한 기운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 그녀의 출연작을 하나씩 찾아보고 있는데, 매번 섬세한 표현력에 놀라게 된다.
<순교자> (유현목, 1965)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촉발되는 갈등 구조는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진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테마라고 볼 수 있다. 이때 포착되는 인간의 모순과 양면성은 종교적 관점 하에서 더욱 흥미롭게 음미할 수 있다. 이 영화 속의 인간들은 초월적 존재(신)를 향해 각기 다른 신념을 지녔다. 이창동의 <밀양>(2007) 속 신애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근원적인 고찰을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는 <밀양>의 신애와 유사한 인물도 존재하고, 다른 면모를 보이는 인물도 여럿 등장한다. <밀양> 역시 관객에게 질문하는 영화였다. 이 작품은 그 질문의 범위가 더 넓다고 볼 수 있다. 극 중 이 대위(남궁원)는 신 목사(김진규)에게 여러 차례 질문을 하지만, 목사는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이 대위가 신 목사에게 질문을 던지듯, 이 영화 자체도 관객에게 여러 지점에서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킹콩(King Kong)> (피터 잭슨, 2005)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연출했던 경험을 연료 삼아 구현한 이 영화의 웅대한 세계관에선 감독의 자신감과 확신이 묻어난다. 장르를 넘나드는 활력이 매력적이고, 사회 이슈를 환기하는 시선도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녹아 있다. 비록 장황한 서사적 설정으로 인해 파생된 다소 과한 러닝타임이 영화의 균형감을 무너뜨리긴 해도, 감독의 뚝심에서 비롯된 특유의 영화적 감각이 이러한 불안 요소들을 위태롭게 떠안으면서도 매력을 발산한다.
<콩: 스컬 아일랜드(Kong: Skull Lsland)> (조던 보트-로버츠, 2017)
원시적인 거대 생물체의 스케일을 살린 연출은 눈길을 사로잡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영화 내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요소들은 평이한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편집의 리듬이 불규칙하고, 낭비되는 쇼트도 다수 보인다. 영화가 인간과 자연을 대비시켜 유의미한 담론을 생성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해내기엔 그 모양새 자체가 심하게 불안정하다. 고질라, 킹콩 등 괴수들을 집결시킨 '몬스터버스(MonsterVerse)'라는 세계관의 일부인 작품이다. 물론 다분한 상업적 의도를 가진 기획이라고는 하나, 기본적인 만듦새가 보장될 때 상업적인 시너지 또한 얻을 수 있다.
<콩: 스컬 아일랜드(Kong: Skull Lsland)>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 KMDb
- I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