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유기된 자의 분투기
시작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는 동안 내내 나는 졸렸다. 학원 수업 사이사이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 잤다. 한 반에 100여 명이 들어앉아 수업을 듣는 교실에서 통 말이 없고,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 자는 내게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한 달이 지나 월말고사를 치르고 학원비 면제 대상이 발표된 후 말을 거는 사람들이 생겼다. 인사를 건네는 사람, 수학 문제 풀이를 물어오는 사람, 개인사를 묻는 사람 등등. 그렇게 말을 걸어온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성적이 발표될 때마다 1등 자리를 차지했던, 20대 중반의 우리 반 반장. 그가 커피를 두고 가거나 우유를 두고 가면서 한 마디씩 말을 걸어올 때, 반장으로 급우들을 챙긴다고 생각했다. 늘 활달하게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고,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전달 사항들을 안내할 때면 야간반 급우들의 피로를 헤아리는 친절함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언제부터인가 음료수와 함께 편지를 두고 갔다. 자잘한 일상이나 읽은 책의 구절 또는 지금처럼 계속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 등을 담은, 따뜻하지만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편지들이었다. 매번은 아니어도, 짬을 내어 답장을 썼다. 나 또한 소소하고 자잘한 내용으로.
그렇게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그가 두고 간 편지에 쓰여 있던 한 문장이 나를 흔들었다.
‘새로움이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엄연하고 확실한 것, 나는 네게서 그걸 본다. 공부를 멈추지 마라. 너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이는 대신 치열한 의지를 요청하는 배움의 노동이 가볍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무언의 비난을 쏟아놓는 아버지를 말없이 거스르는 행위를 지속하는 긴장감과 불편함이 늘 나를 내리눌렀다. 검정고시를 마치면 학력고사를 보아 대학에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없었다.
내가 지쳐 있는지 아닌지, 장차 무엇이 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이 내 곁에는 없었다. 오랜 시간 그랬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서 새로움과 가능성을 본다고 ‘썼다’. 나라면 뭐든 할 수 있으니 멈추지 말고 공부하라고 응원했다. 놀랍고, 기쁘고, 가슴이 아팠다.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인 양 ‘문자’로 쓰인 그 말이 분명 나를 가리킨다는 사실에 설레는 한편,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열었다. 알아보아 주고, 관심 가져주고, 계속 응원해 줄 사람이 갈급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몇 달을 보내는 동안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다.
여름날 시작된 첫사랑이었다.
사라짐
가을이 깊어져 겨울로 치닫던 11월 어느 날, 그 사람이 사라졌다.
우리 반 반장이었을 뿐 아니라, 주야간 모든 반들의 통합 회장이었던 그 사람이 학원에조차 아무 소식이 없었다. 누구도 그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래왔듯 그 사람 집으로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하면 늘 집에 없었다.
학원에 갈 때, 학원에서 나올 때, 거리를 가득 메운 가을의 현란함과 휘날리는 낙엽을 견딜 수 없었다. 들이쉬고 내쉬는 모든 숨이 칼날이 되어 심장을 찔렀다. 익숙한 고통. 열두 살 여름, 알지 못한 채 아버지에게 유기되었던 바로 그날들의 고통이었다.
그날부터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새해가 되어서야 같은 반 한 아저씨를 통해 그 사람 소식을 들었다. 사실 그는 입대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전역 후에 공부를 다시 하려니 학력고사 학원의 수업을 따라갈 자신이 없어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고, 학력고사를 잘 마쳐 학원을 중단했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나를 포함해, 누구도 몰랐던 사실들이었다.
그럴 수 있다. 차마 말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내게 일언반구 없이 사라질 수 있는가. 어떻게 서너 차례 거듭된 연락에 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3월이 되어 뒤늦은 답장이 왔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입학식에, 수강 신청에... 바빠서 연락을 못 했다고,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미안했을까. 그랬다면 사라지고 넉 달이 지나 편지로 소식을 전했을 리 없다.
4월 검정고시를 앞두고 있었지만 폐허가 된 내 마음은 공부를 거절했다. 몇 달 동안 허수아비처럼 학원을 오간 끝에 본 검정고시 총점은 합격점은 한참 넘었어도 학원의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수개월이 더 지나 어쩐 일인지, 그가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답장하지 않았다. 그를 믿을 수 없었다. 믿음이 사라진 관계에 사랑이라니... 기만이었다.
돌아섰지만, 내상은 깊었다. 몇몇 급우들과 담임 선생님이 주소 하나 들고 성남집으로 찾아왔지만, 난 학력고사 공부를 이어질 의지를 상실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해마다 늦은 가을이면, 거리를 지나는 일이 버거웠다. 현란한 낙엽과 가을바람은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의 뿌리부터 차오르는 슬픔을 다시 소환했다.
새로운 세상을 목도하는 배움의 환희는 분명 아버지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 힘은 어쩌면 척박한 토양에 뿌려진 씨앗 정도였던 모양이었다. 어떤 비바람에 뿌리가 뽑혀버릴 만큼 작고 유약한 묘목 한 그루를 겨우 키워낼 만큼의 힘.
세상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 있고, 정서적 충격을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의 토양이 충분히 윤택하지 않다면 인지적 자질과 의지는 재가 될 수 있다. 아동기의 폭력 체험, 특히 유기가 남긴 심장의 불씨는 이런 방식으로 되돌아오는 것일까.
이별의 예의
개개인의 정서 상태와 무관하게, 이별에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지 않을까. 떠나야 하는 이가 그 순간 진실을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 해도, 남겨진 이가 홀로 감당해야 할 혼란과 염려를 배려할 길은 없을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아름다운 이유는 티모시 살라메의 멋진 외모나 엘리오가 올리버를 통해 체험하는 첫사랑의 설렘 때문만이 아니다. 올리버는 엘리오와의 짧은 여행을 끝내고 도시로 돌아갈 때, 장차 그들의 관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 후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여성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것이 관계가 끝났음을 알리는 잔인한 확정 통보일 수도 있지만 엘리오를 미망과 미련의 고통에 홀로 두지 않는 최소한의 예의일 수도 있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전화를 받은 후 흐느끼지만, 이로써 엘리오는 올리버와의 사랑을 완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은, 이별의 예의로 완성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