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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의 영화 Nov 11. 2022

디오니소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나더 라운드>, 토마스 빈터베르그 (2020) 리뷰

어나더 라운드 Druk (2020)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라센, 라르스 란데, 토비아스 린드홈 

별점: 4/5

각각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같은 고등학교 교사 니콜라이, 마르틴, 페테르, 톰뮈는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열정마저 사라지고 매일이 우울하기만 하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 흥미로운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르틴이 실험에 들어간다. 인기 없던 수업에 웃음이 넘치고 가족들과의 관계에도 활기가 생긴 마르틴의 후일담에 친구들 모두 동참하면서  가지 조건을 정한다. [언제나 최소 0.05% 혈중 알코올 농도 유지할 !  8 이후엔 술에 손대지 않을 !] 지루한 교사,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 최적의 직업적, 사회적 성과를 위해 점차 알코올 농도를 올리며 실험은 계속되는데과연 술은 인간을  나은 상태로 만들  있을지, 도전의 결말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적 관점에서 불안의 해소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이다. 모든 불안한 이들은 결국 실패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인 탓이다. 자유는 과거의 실패를 자양분 삼아 성장하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빈터베르그는 그렇게 성장하는 개개인이 만남으로써 비로소 사회가  나은 공간이   있으리라 믿는 듯하다. 그들이 교류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바로  공간에, 디오니소스의 은총이 거기에 있었다.

영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덴마크라는 국가와 주요 주제가 되는 키에르케고르라는 사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나마 해보자.  유명한 '햄릿' 배경이기도  덴마크는 그야말로 (비하적 의미가 아닌 사실 그대로) 음울한 정서의 국가라고 해도 될만한 곳이다. 그런 덴마크가 낳은 가장 유명한 철학자   명인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그런 덴마크의 기후와 정서답게 자신의 실존주의 사상의 연구에서 핵심적 개념으로 '불안' 제시했다. 그는 그의 저서 <불안의 개념>에서 실존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역설했는데, 그에게 불안은 단순히 부정적인 관념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인간이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바로 불안에서 나오는 탓이다. 따라서 모든 이들은 기본적으로 내재된 불안을 안고 있으며,  불안한 가능성으로부터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유로워질  있는 것이다.

< 헌트> 등의 영화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일종의 철학적, 윤리학적 실험실로 이용해  빈터베르그의 연출 방식은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능했다. 그는 <어나더 라운드> 통해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이라는 개념을 실존적으로 해소하는 방식에 대해 충실하게 논하고자 한다.  주요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 알코올의 섭취를 통한 자신감의 회복이다. 마르틴을 비롯한  명의 고교 교사들은 자신의 불안과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 유지해보자는 어찌 보면 괴상한 아이디어를 실천한다.  과정에서  사람은 각자 조금씩의 성과를 보고, 이들은 점차 마시는 술의 양을 늘려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흥분이 최고로 고조되는 경험을 위해 극도로 만취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과정에서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껏 회복되고 있던 마르틴과 아내 아니타의 관계가 이전보다도 더한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고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이 겪는 감정의 고조는 고대 그리스 신화  술의  디오니소스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닮았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술을 통해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약간의 술을 마신 상태에서 인간은 몸의 긴장이 풀리기에 오히려  정신일 때보다도 차분해지고, 그보다  술을 마시면 자신감에 넘쳐 누구보다도 용감해지며 거기서  나아가면 모종의 황홀감을 느낀  최고의 흥분을 느끼게 되지만  선을 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을 인간이게 하는 어떤 요소를 잃어버릴 정도로 고삐가 풀려버리고 만다. 이처럼 선을 넘고 인간됨을 잊게 되어 모종의 실패들을 겪은 마르틴을 비롯한 인물들은 알코올 중독의 위험성이라는 이유로 실험을 종료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발버둥 친다.

여기에서부터 영화의 핵심적 주제가 본격적으로 제시되기 시작한다. 이들의 불안은, 이들을 기나긴 실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우울은 결국 극복될  있는가 하는  말이다. 영화는  질문에 앞서 언급한 키에르케고르의 논리를 빌려와 답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음 단계' 나아갈  비로소 앞을 가리던 '불안' 자유로 향하는 '불안한 가능성'   있다고. 사실 필자는 영화를 보기   영화의 제목이 덴마크어 원제 <Druk>('과음' 뜻하는 단어다.)에서 <어나더 라운드> 바뀌어 개봉한 것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단계' 나아간다는 맥락에서   어쩌면 제목의 변경은 보다 직관적이고 와닿는 방식으로 영화를 소개하는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마르틴과 친구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해온 알코올을 이용한 실험이 그저 쓸모없는 실패일 뿐이라 여겼지만 사실 이들의 실험은 그들이 교사로 활동한 교내 외적으로 큰 변화를 야기하고 있었다.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마르틴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 학생들, 텃세와 따돌림이 극복된 축구부, 비로소 화음을 맞추게 된 합창단과 불안을 극복하고 술 한 모금에 긴장을 풀어 심리학 시험을 치른 학생까지. 비록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톰뮈의 사례가 있음에도 이들의 사회 실험은 그들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도 과거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는 크나큰 교훈을 주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마르틴은 그제야 자신이 과거 저지른 실책을 털어내고 새로운 나날로의 '불안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영화는 고교 졸업식의 한복판에서 황홀경을 느끼며 춤추는 마르틴을 비추며 마무리된다. 다시금 자신감에  신나게 술을 마시며 인파 속으로 달려 나가는 그의 모습은  이상 직관적으로 묘사할  없을 정도로 자유로워 보인다. 모두가 불안해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완벽한 공간은 존재할  없을지언정, 모두가 이전보다 조금씩 나아지며 눈앞의 자유를 향해 불안한 걸음을 내딛는 세상은 만들어질  있다고 빈터베르그는 믿은 듯하다. 그렇게,  자리에는 디오니소스의 은총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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