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마블 스튜디오 (2021) 단평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감독: 존 왓츠
제작: 케빈 파이기
출연: 톰 홀랜드, 베네딕트 컴버배치, 젠다이야, 존 패브로 외
별점: 4/5
정체가 탄로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톰 홀랜드)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도움을 받던 중 뜻하지 않게 멀티버스가 열리게 되고, 이를 통해 '닥터 옥토퍼스'(알프리드 몰리나) 등 각기 다른 차원의 숙적들이 나타나며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마블 액션 블록버스터.
(단평은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씨네필들은 물론이고 모든 일반 관객들마저도 이 영화가 나아갈 방향성에 민감한 반응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스포일러 없이' 본 작을 소개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글을 쓰고 끝맺어야 할지를 고려하는 일은 무척이나 애매하고 또 모호한 일이었다. 필자로서도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 여러분을 위해 어디까지를 언급해야 하고 또 무엇을 언급해서는 안 될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 한 마디만큼은 마음 놓고 여러분께 내뱉을 수 있겠다. "마블 스튜디오가 해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마블 스튜디오는 물론이고 소니 스파이더 유니버스, 심지어는 DC 확장 유니버스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모든 수퍼 히어로 세계관을 운용하는 제작사들이 선보인 영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업물이다. 이는 단순히 영화의 각본으로서의 완성도가 높다거나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연출을 보여주었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은 모든 21세기 수퍼 히어로 영화 가운데 가장 윤리적인 작품이며, 동시에 가장 '시네마적'인 작품이다.
<노 웨이 홈>은 마블 스튜디오의 세 번째 스파이더맨 솔로 무비임과 동시에 몇 차례의 리부트를 포함하자면 지금까지 21세기에 실사 영화화 된 스파이더맨 솔로 무비 시리즈 중 여덟 번째 작품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여덟 편의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이 단순히 순탄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간 소니와 마블 스튜디오는 지속적인 판권 다툼과 제작사의 압박 등으로 인해 때로 탁월한 작품(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2>가 대표적이다.)을 내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이야기 전개에 있어 지지부진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지 않았던가. 토비 맥과이어의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은 두 번째 시리즈까지 흥행과 비평적 성과를 동시에 잡은 수작을 만들어냈으나 3편에서 급하게 베놈을 출연시키려는 과욕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2편에서 흥행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캐릭터의 이야기를 끝맺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려버렸다. 톰 홀랜드의 이번 스파이더맨은 어떤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겨우 마블 스튜디오의 품으로 돌아온 그는 소니와 마블 스튜디오의 협상이 수 차례 결렬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기도 전에 다시금 이야기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그런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우여곡절이 있는 만큼, 누군가 지금까지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지나왔던 방향을 거슬러 올라 그 지난했던 행보에 시네마적 위로를 전하는 작업을 진행해주는 것은 모든 스파이더맨 팬들의 소망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존 왓츠와 케빈 파이기는, <노 웨이 홈>은 그 작업을 완벽하게 성공시킨다. 영화는 이 작품을 통해 그간 '어른의 사정'으로 팬들의 욕심을 채워주지 못했던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를 되짚어 보고, 관객들에게 사과와 늦은 선물을 동시에 전하겠다는 의도를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말하자면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의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인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엔드게임>이 세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20여 편의 영화 속 지난 장면들을 따스하게 되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야기의 드라마성을 상당부분 희생했던 반면 <노 웨이 홈>은 과거의 장면들에 대한 오마주와 함께 미처 완성되지 못했던 이전 시리즈들의 드라마마저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방향으로 완성시켜버린다.
선배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그들이 흘린 땀을 대신 닦아주기 위해 영화는 과거의 시리즈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헌사를 보낸다. 멀티버스를 통해 마블 스튜디오의 세계관으로 흘러들어온 이전 시리즈의 빌런들을 한 명 한 명 주목하며 <노 웨이 홈>은 구세대에 대한 박수와 작별을 동시에 고한다. 새로운 세대로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구세대와의 작별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탓이다. 그렇게 모두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혼란스러운 공간 속에서, 영화는 숭고하고도 겸허하게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다.
떠나갈 때를 아는 이들의 뒷모습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은, 떠나보낼 때를 알고 작별을 고하는 이의 앞모습이다. <노 웨이 홈>은 구세대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한 러브레터이며 새로운 세대를 향해 고하는 매니페스토다. 이들의 이토록 멋진 성공 이후 초심으로 돌아간 스파이더맨의 앞에 어떤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마블 스튜디오는 이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내고 말았다. 자신들은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