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미혼 장녀입니다만… #11

#동네사랑방

by 세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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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모든 이야기는 이곳으로 모인다

동네에서 자영업자로서 15년쯤 한 자리를 지키면 자연스럽게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 우리 엄마는 말은 (정말) 많지만, 의외로 그렇게 수다스러운 분은 아니다.


이 모순적인 게 무슨 말이냐 하면, 엄마는 대한민국 아줌마 표본처럼 정말 주변 사람을 살뜰하게 챙기는 분이다.

맛있는 거라도 사서 먹거나 외식이라도 한 번 나갈라치면 동네 모든 사람을 불러 모으신다. 하하호호 웃으면서 같이 식사하는 걸 제일의 친교라고 믿으신다.


하지만 수다스러운 분이 아니라는 부분은, 울타리에 관련한 이야기다. 의외로 생각보다 엄마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 외에 일에는 아예 관심의 셔터를 내린다. 물론 울타리 안에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에너지를 다 써서 자의 반 타의 반인 것 같긴 하다. 아무튼 사람 좋아하고 어울리는 거 좋아하니까 주위에 사람이 많을 수밖에.




신발을 되찾는 능력

가게에 있으면 동네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는 다 들려온다. 여름철이면 슬리퍼가 다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 몰라도 신발을 바꿔 신고 가는 일이 잦다. 신발이 바뀌면 엄마는 신발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헉, 엄마 손님 신발이 바뀌었대, 어떡하지?’

‘집에 가면 되지.’

‘집을 알아?’

‘응 저 위로 올라가서 첫 번째 골목으로 꺾어서 3번째 집이야.’


10년 이상된 단골이 많아서 정말 ‘숟가락 개수’까지는 모르더라도 집이 어디고 가족 관계가 어떻고를 줄줄 알고 계신다. 설령 몰라도 대충 근처 가면 ‘ㅇㅇ 엄마!’라고 부르면 옆에 사람이 알려준다고 한다.

옛날 어르신들 같은 정이 살아있는 곳이니 가능한 일이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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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랑방

내가 가게에 가면 항상 만나는 분들이 계신다. 이 분들은 음식점에 밥 먹으러 온 것도 아니고, 예약을 하러 온 것도 아니고, 그냥 엄마에게 고민 상담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오신다.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하다가 주먹까지 오고 가며 경찰이 왔던 부부싸움을 했던 이야기부터, 20년간 같이 일한 동료의 말실수로 손님이 물건을 사지 않고 나간 이야기까지


대부분 좋은 이야기보다 안 좋은 이야기가 많다. 그러면 우리 엄마는 어제 들은 이야기여도 세상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온 신경을 집중한다. 마치 시험 당락을 좌우하는 한 문제를 앞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엄마 성질만큼 이야기가 빨리 진행이 안 되거나 상대방이 말이 느리면 ‘하이고 숨 넘어가겠네, 빨리 좀 이야기해!’라며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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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사회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1. 우선 ‘안 좋은 이야기’가 꼭 필요하다.

2. ‘어머 어머 웬일이니!’ 격한 리액션을 보인다.

3. ‘너도 속이 썩어 문드러지겠구먼.’ 공감한다.

4. ‘그놈 못 쓰겠구먼.’ 격분하는 과정을 통한다.

5. 이 과정을 거치면 친구가 생길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엄마 친구가 찾아왔다. 엄마는 친구의 걸음걸이만 봐도 기분을 맞출 정도로 눈치가 타고났다. 그래서 할 말도 들을 말도 참 많은 엄마다. 오늘도 소란스러운 우정 변치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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