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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Apr 14. 2019

싸이월드

소식이 끊겨 기억 저편에만 남을 것이라 생각했던, 런던에서의 어느 인연과 연락이 다시 닿게 되는 우연이 찾아왔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니 문득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가 떠올라 그 흔적을 더듬어보려는 마음에 싸이월드를 찾았다. 실로 오랜만에 들여다본 내 미니홈피의 방명록은 희미해진 기억의 전시장 같은 느낌이어서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이나 그곳을 배회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밀랍 인형들처럼 멈춰진 시간 속에서 여러 가지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친구들, 형들, 누나들, 동생들, 가족들, 오랜 지인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인연들과 심지어는 누구였지, 하고 골똘히 기억을 더듬게 되는 사람들이 불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는 그곳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부유하고 있었고, 나의 모습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까맣게 잊고 지냈던 기억들과 현재 사이에 놓인 거리는 가까운 듯 멀었고 그것은 괴리감과 아련함, 그리고 웃음을 한꺼번에 불러일으켰다. 그리운 기억들과 그립지 않은 기억들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는 공간 속에서 잊었던 감정들은 박제가 되어 놓여 있었다. 어떤 것들은 눈물이 날 만큼 매혹적인 색깔을 띠고 있어 나도 모르게 매만지려다가, 행여 얇은 껍질이 바삭하고 부서져 내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가 찌익 하고 뿜어져 나올까 두려워져 급히 손을 거두었다. 고여있는 시간은 아름다웠지만 그것이 상기시키는 빈 공간들과 상실의 흔적을 마주하고 있다 보니 고단함을 느껴, 온 길을 되짚어 나가는 길에 여러 명의 나와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들도 있었고, 지금은 더 이상 짓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어느덧 입구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자 저 멀리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인 듯도 했지만, 기분 탓이려니 생각하며 문을 닫는 그 틈으로 어둠이 재빠르게 밀려들어 그곳을 뒤덮어갔다. 몸을 돌려 한참을 걷다 뭔가 따끔거려 둘러보니 이런저런 추억들이 도깨비풀처럼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휙 털어버리려는데 어째선가 쓸쓸한 기분이 들어, 쳐든 손을 조용히 주머니에 넣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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