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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Apr 14. 2019

시간의 흔적

시간이 분하게 흘러간다. 책상 위에 쌓여가는 종이쪽지들로 알 수 있다.

모양도 크기도 판이한 무언가의 뒷면, 무언가의 일부. 그 단아한 검은색 수첩에 인공적으로 적혀있던 일련의 정보들은 부서진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졌다.


종이조각들 위 무수히 휘갈겨진 숫자들. 짧은 문장들. 반복되는 느낌표. 단 몇 페이지밖에 채워지지 않았던 수많은 검정 수첩들에 매번 억지로 적어내던 계획, 했으면 하는 일들. 백일몽의 흔적들. 이미 온데간데없고 시간과 절망에 쫓긴 비명들만이 책상 위를 뒤덮고 있다. 삶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사항들로 가득하고, 보이는 곳마다 너저분하게 메워진 작은 메모들은 몸부림친다. 몇몇은 하루의 시작과 끝에 닿은 내 손에 구겨져, 버려진다. 몇몇은 철 지난 쿠폰들과 책상 한 귀퉁이에 쌓여간다. 실행되지 못한, 내 삶의 작은 여유조차 점거하지 못한 생각의 단편들. 화장실 휴지의 영수증 따위와 함께 차곡차곡 모여, 지나간 여행에서 들고 온 음식점의 명함들이 들어있는 지퍼백에 들어가 계륵이 된다. 


모든 것들을 점점 기억하기 어려워하는 나는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펜과 그때그때 보이는 어딘가의 여백으로 사생아를 낳는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걷잡을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날짜와 시간과 숫자의 처절한 신음 속으로 끝없이 버려지는 생각의 단편들. 달력이 한 장 한 장 떨어져도 현현하지 못하고 외면받는 내 삶의 일부들이 수북이 쌓이는 걸 보면서 느낀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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