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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Jun 14. 2019

내가 쓴 그 안경

기쁨의 순간은 끝을 잡을 새도 없이 사라진다. 머릿속에서 터지는 폭죽,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들. 기억의 한가운데 선명하게 새겨져 영속한다. 슬픔의 순간은 억겁의 시간. 헤어날 수 없는 자기 환멸과 복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감정의 형벌은 흉터를 남긴 채 어느새 증발해 있다. 시간의 상대성이 가진 반전. 아이러니한 귀결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나야 다가오는 거대한 공백.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은 먹먹한 아픔이 되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가르침이 된다. 오색으로 반짝이는 그것이 손안에 있을 때 소중한 것을 알았더라면. 웃음이 사라진 자리에 홀로 서서 허전한 손바닥을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마음을 구해준 것은 타인의 위로도 조언도 아닌 나 자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길 원하는 의지는 두드려 맞은 마음에서 피어났다. 후회, 증오, 그리움 그 어떤 것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었다.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갈림길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방향을 정할 뿐. 습관적으로 내딛는 발걸음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한번 더 묻는다. 갈망에 휩싸여 또다시 같은 곳을 향하는가? 


지겨운 것도 지겹게 겪어봐야 안다. 접싯물에 코 박고 혼자 괴로워하는 것이 지겨워졌다. 타인의 경험담은 스스로 체험했을 때 비로소 실체를 가진다. 공허의 전당에서 빠져나와 가슴속에 스며든다. 진정으로 원하지 않을 때 모습을 드러내는 야속한 법칙. 머리로만 깨닫고 있던 단순한 진실. 마음으로 소화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즐거운 우연이 찾아왔다. 그대로인 세상에서 내 마음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전부가 달라진다. 조심스럽게, 내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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