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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Apr 09. 2023

김치를 모른다고? 이거나 먹어라!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던 시절 

한국에선 당연한 듯이 먹던 김치가 런던으로 유학을 오니 사치품이 됐다. 영국 파운드 환율이 2천 원을 넘던 시절이었다. 런던 시내엔 한인 식료품점도 별로 없었다. 가격도 한국에 비해 두 배 가량 비쌌다. 대학생 마인드가 속삭였다. 그 돈에 맥주를 마셔. 안 먹으면 죽는 것도 아니잖아. 맥주는 안 먹으면 죽어. 어쩌다 김치를 얻어와도 같이 사는 친구들은 냉장고에서 나는 냄새에 기겁을 했다.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Korea,라고 답하면 99.99 퍼센트의 확률로 "North or South?"라 따라붙었다*. 그곳에도 냉장고가 있니, 따위를 묻지 않은 게 고마울 정도다. 


 




친구 몇몇을 초대해 내 기숙사에서 저녁을 대접한 적이 있다. 친구들이 사 온 람브리니(Lambrini, 탄산이 가미된 배 사이다로 대학생활을 수놓는 싸구려 술의 대명사)와 맥주를 마시며 음식을 만들었다. 애호박과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와 계란찜, 오븐에 구운 고등어가 메뉴였다. 큰 마음먹고 사 온 김치도 내놓았다. 올리버가 물었다. "이 발냄새나는 건 뭐야?" 


나름 예상한 반응이었지만 발냄새라는 창의적 표현에 말문이 막혔다. 발효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를 이해시킬 만큼 명쾌한 대답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냉장고에서 남은 김치를 꺼냈다. 믹싱보울에 밀가루와 물을 붓고 젓가락으로 대충 저어 섞은 후 농도를 맞췄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믹싱보울에 잘게 썬 김치와 국물을 넣고 섞었다. 알맞게 달아오른 프라이팬에 반죽을 붓자 촤아악 하며 기분 좋은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공간을 채워나갔다. 친구들은 무엇을 만드나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완성된 김치전을 테이블로 가져갔다. 포크를 든 올리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Pancake?" 고개를 끄덕이며 초간장에 살짝 찍어먹으라 일러줬다. 김치전이 그의 입 안에서 바삭하는 소리를 냈다. "So good!! What is this?"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발냄새나는 걸로 만든 거야." 올리버는 멋쩍은 듯 헤헤거리더니 김치전의 절반을 혼자 비웠다. 불과 기름을 만난 김치의 감칠맛은 거역할 수 없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바싹 튀겨낸 김치전은 여전히 술자리의 단골 안주다




*이 질문은 훗날 내 스트리트 푸드 브랜드의 상호명이자 인스타그램 계정 아이디의 유래가 됐다.


메인 이미지 출처 - GIPHY @kwaesam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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