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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크홀릭 Mar 20. 2019

지자체와 최저임금

롤모델로서의 정부 노동관

막역한 지자체 공무원이 전화를 해서 민간인 기간제 근로자 인력수급의 문제를 한탄했다.

(모든 지자체가 충분한 공무원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에 따라, 사안에 따라 민간인 근로자를 뽑아 부족한 일손을 메꿔 가며 공무원들과 함께 공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응시하는 사람이 없어 재공고를 하네, 막상 들어온 서류를 봐도 쓸 만한 사람이 없네, 뽑아 놓으면 제 몫을 하는 사람이 없네. 식의 지자체 공무원들 신세한탄(?)을 한두 번 듣는 게 아니라 수일 안에 만나서 소주나 한잔하세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 후 문득 어떻게 채용공고를 내 길래 응시하는 사람이 없을까 싶어 지자체의 공고를 찾아보았다.

정부 공문 특유의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를 반복하는 채용공고를 혀를 차 가며 보다가 보수(일급): 66,800이라고 쓰인 항목에서 눈길이 멈췄다. 왜 일급이지? 민간 기업들의 채용공고처럼 연봉이나 월급이 아니고? 라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가, 그런데 이 보수(일급)은 시간급으로 나누면 얼마인가? 라는 생각에 계산을 해봤다.  


보수(일급) : 66,800원 / 8시간 시급 8,350그렇다. 2019년 최저임금은 8,350원이다.  


허탈한 일이다. 이래서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성장은 청와대에서만 외치는 공허한 울림이 아닌가?

중앙정부가 아무리 소득주도성장을 외치고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지방자치단체는 아무 생각 없이 노동자의 급여는 최저임금만큼만 주면 되는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행여 잘못된 지자체의 예 하나만 보고 성급히 낙담한 건 아닌가 싶어 전국의 지자체별 민간인 근로자 채용 공고를 전국에 걸쳐 찾아보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하는 확증으로 바뀔 뿐이었다. 


경상남도, 충청남도, 강원도의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았다.

[경상남도 OO군의 채용공고]  




[충청남도 OO시] 


[강원도 OO군] 


[경상북도 OO군]  


기간제 근로자의 보수를 정함에 있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여 정하는 것이 과연 잘하고 있는 일인지 지자체 인사담당관과 책임 있는 분들은 반드시 생각해 볼 중요한 시정사안이다.  

노동자는 무엇으로 일하는가? 라는 질문에 무엇보다 급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노동자가 이력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일자리의 기준이 급여만은 아닐 것이다.

급여 외에도 고용의 안정성, 복지, 자기개발, 직업의 사회적 위상에 따른 자기만족 등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다.  


지자체의 기간제 근로자 채용공고들을 살펴보면 근무기간은 딱 봐도 결원이 있는 동안 또는 올해 예산 회계 마감일까지로 매우 짧으며, 대부분 1년을 못 채우니 계약종료 후 퇴직금도 없다. 내년에 예산이 있을지, 조직 내 인사이동 등의 여파 등을 생각해 보면 고용연장은 당연히 담보할 수 없다.

어떤 채용공고에도 자녀의 학자금을 지원한다던지, 자기개발을 위한 교육이나 연수, 훈련 등을 제공한다고 적혀 있지도 않다.


또한 채용공고들은 명확하게 당신은 기간제 민간인 근로자이며, 공무원이 아니고 또한 본 채용에 따른 경력이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것과 전혀 상관없다고 적고 있다.  

지자체가 내놓은 기간제근로자들의 채용공고를 정리해 보자. 노동자의 입장에서 고용의 안정성, 복지,자기개발, 사회적 위상……. 뭐 하나 좋은 것 없는 일자리에 급여 기준은 최저임금으로 정해 놨다.

이렇듯 공고를 내 놓고 응시하는 사람이 없어 매번 급하게 재공고를 해야 하며, 뽑아도 일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푸념할 것인가?


그러고는 젊은이들은 다 수도권으로 떠나고, 지역경제는 소비위축으로 나아질 기미가 없다고 한탄하는 것은 또 얼마나 우매한 소리인가 싶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여의도와 청와대에서, 또 광화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노동과 경제를 얘기하고 토론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실물경제와 가장 기본단위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동작하는 지자체가 아무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그뿐인가? 지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을 지원해 봐야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동자들만 남은 도시에서 무슨 소비가 이루어지겠는가?

유명 연예인을 부르고 대규모 이벤트를 여는 지역 축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도, 축제손님의 마중물 역할을 해주고, 또 축제의 주인이 되는 시민들이 막상 지갑을 열 여력이 없어 시큰둥하니 갈수록 지자체의 고심은 깊어가고 있다. 


시민들을 위해, 또 지자체와 지역발전을 위해 지방자치에 걸맞은 노동관과 철학을 갖추길 주문한다. 

지자체의 노력은 2020년 오늘 또 다시 지자체의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알일 이다.


그때에는 우리 지자체는 노동과 지역경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으며,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며, 여전히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무념무상의 안일함을 최저임금을 통해 자랑하는 지자체들이 많이 사라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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