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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 청천 Sep 26. 2022

인생 최악의 5월을 보내고 있어

20P年05月





'결혼 한지 3개월'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5월 말, 아직도 나는 ‘결혼하고 어때요?’라는 질문에 ‘다르지 않아요. 똑같아요’라고 답다. 나는 '결혼' 했을 뿐 매일의 일과 생활이 바뀐 것은 아니. 내가 여전히 주말 커플을 유지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 면도 있다. 우리는 신혼집을 구했고 그이는 그 집에서 출퇴근을 시작다. 그러나 나는 주중에 타 지역에 있는 전세 자취집에서 생활을 한다. 나는 그곳에 몇 년이나 있었고 그곳이 나의 일과 생활 반경에 있다. 그리고 나는 운전을 못며 그 집을 얼마에 계약했는지 듣는다면 놓칠 수 없음을 모두 공감할 것이다. 아무튼 결혼식이라는 이벤트가 있었을 뿐 나는 다시 나의 생활로 돌아갔다.   

 '



 

스멀스멀 생리통이 조여 왔다. 약을 먹을까 하다가 억지로 참았다. 잠으로 버텼더니 한 시간 조금 더 잔 듯했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저녁 6:03. 폰을 열어보니 문자가 와있다. 그이였다.


'나는 지금 생애 최악의 5월을 보내고 있어... 나는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야.'


...........................?! 눈이 번쩍 뜨였다. 동시에 내일 해야 하는 실습과 다음 주를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밀물 들어오듯이 머릿속을 메워왔다. 하지만 이건 명백히 미루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일어나기로 했다. 오늘 신혼집 근처 역으로 가는 마지막 기차가 몇 분 후면 출발한다.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피곤이라는 곰과 짐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급한 마음에 내일 신어야 할 구두를 신고 뛰었다. 가까스로 기차에 올라탔다. 자주 있는 기차가 아니었기에 아침 스케줄에 늦게 도착할 것 같아서 일정 조정을 위해 연락을 돌렸다. 내게 많은 일이 마이너스가 된다고 해도 나는 가야 했다.





3시간가량 이동하여 도착했고 현관문을 열었다. 깜깜했고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각이면 집에 있을 시각인데 불안했다.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했고 또 받지 않았다. 그때 도어록 소리가 울리고 현관문이 열렸다.


그이가 보이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빠! 나왔어!”

“응 왔어?” 침착한 목소리 그리고 불그레한 눈가.

처음 보는 모습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달려가서 그이를 안았다. 우리가 현관에서 만난 순간은 나의 췌장에 주홍글씨로 새겨지고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그이의 외로움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이는 신혼집으로 들어오면서 본가 근처에 있는 친구들과도 만나기 어렵게 되었고, 혼자 그 낯선 곳에서 고립감을 느꼈던 것 같다. 결혼을 했는데 내가 똑같은 생활을 했다는 것은 문제였다. 결혼식 전후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상황을 인식할 때마다 나는 이것이 문제인지 몰랐다. 그이는 내가 변함없이 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자신의 외로움을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원가족이 만든 집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다가, 스무 살에 독립하여 집을 나왔다. 그래서 딱 10년간  하나의 객체로서 온전히 내 삶을 누렸다.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직접 가정을 꾸려서 집을 만들었다. 이제는 지난 10년처럼 독단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나의 움직임은 가정에 영향을 미친다. 나 혼자 신난다고 팽글팽글 돌아버리면 주변 톱니바퀴는 억지로 자신을 굴려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나는 자취집을 처분했다. 우리가 가정을 이루어 함께 하기로 했던 마음과 책임을 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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