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 청천 Mar 14. 2023

아기가 날아왔어요!

20O年6月






늦은 밤, 침대에 누워 폰으로 집 근처 산부인과병원을 알아봤다. 혹시 해서. 하룻밤이 지났고 아침이 되었다.  그이를 회사에 보내고 침대에 앉았다. 미리 사두었던 테스트기를 가지고 비장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상에. ‘두 줄’이다. ‘두 줄’이라는 것은 이렇게 선명하구나. 우리에게 ‘아기’가 날아왔다. 


생각보다 이 이벤트는 복잡한 감정을 주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이행한 시기였다. 그런데 마냥 기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마음도 신기했다. 조금 서성이다가 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오빠”

 “응”

 “나 테스트 해봤어”

 “응?”

 “우리한테 아기가 왔어”

 “진짜? 축하해!!”

 “축하? 응. 오빠도 축하해.”

 “와!”

 “응”

 “그럼 이제... 나는 친구도 못 만나고.. 게임도 못하고..”

 “오빠 그만ㅋㅋ 이런 순간들 오래 가. 이러면 안 돼ㅋㅋ 퇴근하면 내가 다시 말하는걸로 하자. 우리 나중에 잘 하자.“


생명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 두 사람에게 온다. 아무것도 없이 온다. 걸을 줄도 모르고 말할 줄도 모르고 무려 의심도 없이 온다. 이런 무해하고 무지한 생명체가 우리에게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감정은 복합적이다. 그이도 분명 아이를 원했고 기뻤을 테지만 아빠는 처음 맡는 역할이라 준비되지 못한 머리에서 말들이 헛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은 남자가 리액션을 준비해두면 좋을 것 같다. 임신의 소식을 듣고 반응해야하는 쪽은 어쩔 수 없이 무조건 남자일테니까. 임신했을 때 섭섭하게 하면 평생 그때 일로 섭섭해 한다고들 한다. 그 시기는 아기도 살아야하고 본체도 살아야하니까 생존을 위한 예민 호르몬이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섭섭해하기 전에 그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직접 임신과 출산을 해야하는 나도 마음이 복잡한데 상대의 복잡한 심경까지 첫대면에 흡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알아본 병원에 가기로 했다. 병원 정보가 많지 않아 의심스러웠지만 일단은 가야했다. 곧 의사를 만났다. 아침에 테스트한 결과를 말하자 알겠다며 검사실로 가라고 했다. 간호사는 내게 속옷을 벗고 치마를 갈아입으라고 했다. 다리를 벌어지게 하는 아주 낯선 의자에 앉았다. 의사가 들어와서 힘을 빼라고 하더니 차가운 의료기기가 순식간에 내부 어딘가에 닿았다. 순식간에 멘탈이 나갔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이라도 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수치스러울 것이 아닌데 수치감이 드는 것이 억울했다. 진료방식을 예상했어야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것이 억울했다. 이 나이 먹고 산부인과가 처음인 것이, 쿨하지 못한 것이, 나 빼고 병원 사람들 다 쿨한 것이 억울했다.   






의사는 타성에 젖어 말을 걸었다. 

 “모니터에 보이세요?”

 “네?”

 “아기집이에요. 9mm정도 되겠네요.”


진료실에 다시 앉았다. 나는 노트에 적어둔 질문사항들을 조급하게 물었다. 나의 불안함을 크게 내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어떤 질문에도 평소대로 하라는 말만 했다. 나는 정보도 중요했지만 나를 안심시켜줄 전문의가 필요했다. 임신이 처음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피를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피는 내가 임신을 했다고 예상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검색 결과 그 피는 착상혈일 수도 있고 유산의 가능성일수도 있다고 했기에 몹시 마음이 휘청이는 상태였다. 겁이 나는 나에게 의사는 무덤덤하게 ‘착상혈일 수도 있고, 유산기일수도 있고’라고 말했다. 안다. 그래, 사실이다. 덧붙여 대부분의 초기 유산은 염색체 이상으로 일어남으로 걱정한다고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 뭘 더 말해줄 수 있겠어. 의사는 2주후에 보자고 말했다. 그때는 아기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 보는 말랑한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아기가 아니 아기가 있을 아기집이 보이는 사진이었다. 손가락으로 1cm를 가늠해보았다.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다. 마트로 갔다. 아기는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일단 내가 좋아하는 아보카도와 체리를 샀다. 

"반가워. 같이 먹자."

아주 조금 실감이 났다. 






일찍 온다고 했던 그이가 늦어졌다. 회사 일이 생겼나보다. 쿠팡맨만 다녀갔다. 나는 거실 쇼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났다. 그이가 초코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꽃 한 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엉엉 울었다. 같이 안고 울었다. 함께라서 기뻤다. 함께 누리고 함께 짊어져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이가 여러 복잡한 마음을 넣어두고, 아내를 위해 애쓰는 남편이 되어주어 감사했다. 

“오빠 고마워. 우리에게 와준 아가 너도.”    















작가의 이전글 인생 최악의 5월을 보내고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