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O年6月
아기는 부부 두 명에게 함께 주어진 선물이자 미션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처음은 엄마 쪽만 미션을 너무 독식한다. 나는 그이와 나의 임신 상태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분이 좋지 않다. 입덧이 있다. 속이 나쁘다.’ 정도의 말로는 감도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웬만큼 센스 있는 그이가 ‘너는 입덧을 안하나보다 등 두들겨 줄 일이 없네.’라는 소리를 하니 말이다. 입덧으로 입원을 하거나 변기통을 매일 붙잡고 있지 않고, 단순한 언어들로는 그이에게 임신 중 상태를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상태는 이렇게 끔찍한데 ‘먹고 놀고 자는 걸로 보이는 구나’ 생각하니 분하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내 인생 전체를 흔드는 이 상황과 감정에 대해 똑바로 표현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1. 격하게 반기는 증상
배란일 2,3일 뒤에 감기 몸살이 들었다. 피가 속옷에 묻어났다. 약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견뎠다. 2주 뒤에나 착상되었는지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태가 너무 심하다. 꺽꺽 거리면서 죽을 듯이 기침 가래 콧물을 쏟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엄마한테 말했더니 좀 참아보란다. 세상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아기만 귀하고 나는 안 귀하구나 싶어서 서럽다. 욱해서 병원을 갔다. 나중에 약 먹는 것보다 지금 회복시켜두는 것이 낫다고 의사가 말했다. 일주일치 약을 먹고 상태는 조금 호전 되었다.
2. 인생이 비관적인 증상
아기집을 확인했다. 아가는 축하 받았고 나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주중에 일했고, 주말에는 대학원 레포트 때문에 전통마을을 방문했고, 여러 도시를 오갔다. 평소보다 많은 일도 아니다. 오히려 편한 주였음에도 무리가 느껴진다. 전화를 돌려 일을 하나씩 정리했다.
입덧을 시작했다. 모든 음식의 맛이, 내가 알던 맛과 달라진다. 채소 비린맛, 생선 비린맛, 고기 비린맛 모든 비린맛만 남고 맛이 없어진다. 이게 말이 되냐고. 원래 음식을 즐기는 사람도 아닌데 미각을 잃으니 하루가 슬프다. 인생이 슬프다. 삶이 무의미하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알약맛이랄까 위액맛이랄까 그런 맛과 냄새의 젤리가, 단전부터 목 끝까지 차올라있는 느낌이다. 뭘 먹으려면 그것을 헤집고 밀어 넣어야 한다. 너무 서럽다. 하지만 먹지 않을 수도 없다. 입에 뭔가 있지 않으면 속에서 비린맛이 올라오니까. 억지로 먹어서 평소의 절반을 겨우 먹는다. 그냥 토해버리고 싶어도 토할게 없다.
표정이 너무 너무 너무 안 좋다. 불쾌지수가 높다. 마치, 예쁜 옷 입고 있는데 습도 높은 땡볕에 서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청소년기의 짜증 같은 것이다.
시간이 안 간다. 앞으로 인생 전체가 이대로 고착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식이장애가 내 일부가 될 것 같다. 매일이 ‘견디는 삶’이 될까봐 그것이 가장 두렵다.
3. 신체를 점령당하고 적응하는 증상
아기 심장소리를 확인했다. 아기가 6주4일쯤의 크기라고 했다. 미간을 펴지 못하는 인생이 계속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갑자기 뭔가 좀 괜찮다. 쓴 젤리가 몸 속에서 사라졌음을 번뜩 느낀다. 입덧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없어진다고 했다. 없어졌나보다! 신이 났다. 음...... 오산이었다. 아직 아기는 내 몸에서 생존하기 위한 작업시간이 더 필요 했다.
그래도 전 주보다 훨씬 좋았다. 일단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쓴 젤리의 느낌이 사라졌고 음식의 첫 맛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입부터 문제지만. 이제는 다행이 배멀미를 하루 종일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돛단배를 혼자 타고 있고, 24시간 배멀미를 하는데, 한 달째 타고 있지만 언제 정박할지 모르는 상태일 뿐이다. 아주 양호해졌다.
요령도 조금 생겼다. 아침에 눈 뜨면 무조건 입에 뭘 집어넣어야 한다. 공복을 만들면 성난 파도가 무섭게 넘어온다. 조금씩 계속 먹고 자야한다. 그리고 매달리듯 비타민을 먹는다. 멀티 비타민은 왜 죄다 그렇게 큰지, 너무 커서 구역질나지만 꼭 먹는다. 괜찮아진 그날 하루, 다르게 한 것이라고는 멀티비타민 먹은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미네랄이나 비타민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시기상 좋아졌을 수도 있다. 아무튼 다시 끔찍한 시간으로 돌아 갈까봐 두려우니 먹는다. 먹는게 생기니까 구토를 하기도 하지만, 종일 비린내에 인생을 절망하던 때보다 훨씬 낫다.
4. 남들 다 하는 걸로 별것도 아닌 걸로 호들갑 떠는 것 같아서 우울하다.
임산부 음식 TIP
피해야할 음식은 인스턴트 식품, 밀가루 음식, 감, 석류, 대두, 칡, 율무, 녹두, 알로에 등이 있다. 입덧한다니까 선배 임산부께서 아이비(과자)를 먹으라고 했다. 나는 힘들면 얼음을 물고 있고, 식사 할 때는 TV를 본다. 식사하면서 TV보는 사람은 비만할 위험이 40%증가 한다고 했다. 그만큼 음식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먹어버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