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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 청천 Jan 04. 2022

회상, 시부모와 첫 대면

가면








그날은, 그이가 나와 연애하면서 가장 황당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나는 당황해서 몸 둘 바를 몰랐는데, 황당?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꾸역꾸역 눈물 닦으며 깨달아야 했다.





그날은 시외버스를 타고, 당시 본인  본가 근처에서 일하던 그이를 보러 갔던 날이다. 터미널로 마중 나온 그이 옷을 갈아입고 싶다고 했다. 집 앞에 차를 주차하면서 부모님 안 계시니 거실에서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아니! '나는 오늘 당신을 보러 놀러 온 것'이라고, '부모님과 마주칠 가능성은 두고 싶지 않다'라고, 여기 차에 있겠다고 했다.





그이가 올라가고 몇 분 후, 딱 딱 딱. 차 창을 두들기는 소리에 놀라 옆을 봤다. 창 밖에는 그이를 닮은 듯 안 닮은듯한 어떤 아저씨가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세상에..........

 “뭐하러 더운데 그 앉아있노. 올라가자.”

정황상 ‘아버님’이라 불러야 하는 분이었다. 나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덜덜덜. 예비 시부모님을 만나는 중차대한 자리에서 자고로 년은 단아한 차림에 단정한 화장을 해야 한다고 주입받는데, 자고로 아랫사람은 윗사람 댁을  방문할 때 음료 세트라도 사들고 가야 한다고 교육받았는데, 집전화로 전화하면 '안녕하세요 누구 친구 누구인데요 누구 바꿔주실 수 있나요'에서 한자도 빠트리면 안 되며 '사랑의 매'가 흔하던 어린 시절을 보낸 인간인데. 덜덜. 내 안의 유교걸과 달리 실제의 나는, 핫팬츠,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 준비되지 못한 빈 손, 더욱더 준비된 적 없는 마음으로 이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안절부절 못 한 채 마음은 몸뚱이에 질질 끌려 아버님이라는 분을 뒤따라가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8개의 치아를 드러냈다. 나는 단전에서 한 호흡에 끌어올린 도레미파'솔'음으로 ‘어머님~’하고 웃었다. 이건 어디서 나타난 본인지, 서비스 정신인지, 이중인격인지, 아수라백작인지, 천상 미소를 얼굴에 만연히 띤 채,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이는 방에서 나와 ‘어? 아버지랑 만났어?’ 그러더니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해맑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각본이 그려졌다.


오늘 당신 부모님과 만나지 않게 해 달라는 내 말은, 그래 듣긴 했겠지. 하지만 관계하기를 꺼려하고 불편해하는 내가 전. 혀. 이해되지 않았겠지. 집에 들어 가보니 예상외로 부모님이 계셨고 나는 차에 있다고 했겠지. 내가 오늘은 만날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예민한 부분이라고 말했지만, 했지만, 조금 더 확실하게 그이를 이해시켰어야 한 건지, 아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면 내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이 직접 내려오셔서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는 상황까지 만들다니.... 사람에게 짜증지수가 있다면 나는 역대급으로 치솟았다. 러나 난 웃어야 하고, 그것도 모르고 이 자식은 웃고 있고....


어머님은, 이렇게 멋진 숙녀를 만나게 해 준 아들에게도 고맙고, 못 볼 수도 있었는데 인연을 만들어준 아버지도 고맙다 하시면서 고맙다는 말을 마침표처럼 다는 분이었다. 신나는 발걸음으로 요즘 배운 악기라며 기타를 꺼내와 동요도 한곡 연주해주셨다. 석류는 알맹이만 먹을 수 있게 손질해주시고, 차는 종류별로 내어주어 다과상만 해도 배가 부를 만큼이었다. 반면 아버님은, 함께 있으면서도 ‘전국 노래자랑’은 꼭 봐야겠다며 TV를 보셨고, 이것저것 초면에 호구조사 질문은 던지셨다. 본가가 어디냐, 이름 한자가 어떻게 되냐, 아버지 형제분들 뭐하시냐, 등 말이다.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없었다는 내 말에는 ‘그랬으면 아픈 사람 마음을 모르겠네.’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무 의미 없었지만 당시에는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었던 멘트들 던지셨다. 늘 내 기분과 상태를 살펴주던 그이는, 그날만큼은 내 속도 모르고, 처음 보는 어머님과 허그를 시켰다.





극적인 만남이 끝났다. 그이와 나는 차에 탔고 나는 얼굴 가면을 벗었다. 목소리 가면도 벗고 말했다.

“........ 일단 출발해”

그이가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달렸을 때 도로가에 차를 세웠고 내게 물었다.

“괜찮아?”

“흐아앙엉엉엉엉”

참고 참았던 복합적인 감정이 터졌다. 그이가 연애 중 가장 황당했다던 순간이었다.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왜 잘해놓고 울어?’라고 물었다. 기가 막혔다. 내가 잘못해서 우는 게 아니라! 그이는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울어서 자신 죄인이 되었고 그게 억울해서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연애 중 가장 황당했던 순간이었다.


실컷 울었더니 감정은 눈물로 다 빠져나가고 이성이 남아 내가 왜 힘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 10년 차 주부인 지인이 이야기 중에 한 다짐이 떠올랐다. “사실 아무도 나한테 시댁 가서 일하라고 한 적 없어요. 누군가는 일 하야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잖아요. 동서 일을 너무 못하고 내가 봐도 내가 일을 잘하니까 다 했는데 10년 지나고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다 ‘내가 만든 틀’인 거예요. 나 이제는 이렇게 안 살 거예요. 내가 감옥 만들어서 내가 들어가는 바보짓 안 할래요.”


나 역시 사회가 주입하고 내가 만든 틀, 고정된 관념이 있었다. 어른들에게 단아한 차림과 단정한 화장을 보여야 한다는 틀은, 내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른들에게 싹싹한 은 성격의 라는 틀은, 그이를 향하는 원망스러운 감정은 꽁꽁 묶고 혼신의 연기를 펼치게 만들어 결국 나를 녹다운시켰다. 결혼할 수도 있는 남자의 부모님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틀은, 아버님의 호구조사와 멘트 하나하나에 휘청거렸다. 나는 그 시간 내내 애쓰는 내가 버거웠다. 나는 단정할 필요도 없었고 싹싹한 젊은이일 필요도 없었고 잘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냥 편하게 내 모습 그대로 인사 나누었어도 괜찮았다. 그래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그이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나만 끙끙거리겠다는 확실한 징조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 내 결혼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아홉 글자 교훈을 만들었다. 잘 보이려고 하지 말자.





이후 내가 그이 집에 결혼 허락받으러 가던 날, 그렇다. 아주 중요한 그날. 그이와 나는 동행하여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예비 시부모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그이 때문에 늦었다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침을 삼키며 나에게 속삭였다.

교훈! 교훈! 굳이 잘 보이려고 하지 마. 애써 잘 보이려고 하지 마. 됐어. 괜찮아. 처음에 못나 보일수록 좋은 거야. 넌 이대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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