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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 청천 Jan 07. 2022

상견례와 결혼식, 날짜 논의하기 : 세계관

20N年10月

 







“결혼식 언제로 생각하고 있니?”

나는 예비 시아버지의 질문에 정확하게 날짜 정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바람 달에 잡았다고 하길래 섭섭할뻔했다.’며 미간을 좁히셨다. 음? 눈치 레이더를 돌렸다. 결혼 당사자 둘의 대화에서 우연히 나온 '3월쯤'이라는 대화가 전달되어 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예비 시부모는 3월(음력 2월)은 결혼식을 할 수 없는 달로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그놈의 바람달인지 하는 것을 알아보았다. 음력 2월(3월)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영등할매가 오는 바람달로 불리고, '바람달'이기 때문에 그때 결혼하면 바람을 피운다는 속설이 있어 예식을 꺼린단다. 또 음력 2월은 날 수가 채워지지 않은 달이라서 좋지 않게 여기기도 한단다. 그이는 바람달에 대해 조사하고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았다며 역사를 들이밀었다.

"조선 순조 때 나온 '동국세시기'에는 윤달에 결혼해야 가족이 번창하고 잘 산다고 했대요 어머니"

그러나 예비 시부모는 투명 귀마개를 장착하고 아랫입술이 불툭 나와 ‘섭섭하다’와 ‘그건 아니지’라는 말을 반복해 읊조리셨다.


상견례 날짜도 의견을 나누었다. 예비 시아버지는 ‘#@!*날은 안 되는데'하고 혼잣말을 하며 스케줄러가 아닌 벽걸이 달력을 찾아보셨다. 처음 듣는 단어라 외국어처럼 들리지 않았지만 아무튼 일정보다 중요한 무조건 안 되는 날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올라오던 숨이 걸렸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법칙으로 움직이는 곳 같았다. 숨을 이렇게 쉬는 게 맞나? 내가 사는 세상의 당연함과, 시부모가 사는 세상의 당연함이 충돌했다. 내 세상 맨틀에 커다란 지진이 났다. 당연함이 부딪치는 문제가 뇌에 들어오면, 이해의 이성 영역에 들어가기도 전에, 좋다 싫다의 감정 영역에서 대환장 파뤼타임이 일어난다. 가령 이런 혼돈 말이다. ‘공중화장실 변기를 쓰고 왜 물을 내리지 않는 거야? 왜? 아니 진짜 왜????’ '결혼식장과 신혼여행이 성수기 비용이 되는데, 내어주실 것도 아니면서 4월에 하라고? 왜????' 나는 내뱉지 못하는 화산처럼 '왜?'라는 용암을 끌어안고 나를 식혀야 했다.


시부모 세상의 법칙을 내 세상의 법칙으로, 내 식대로 변환시키려고 노력했다. 3월은 꽃샘추위가 있는 시기이니 당사자들과 하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달이라는 이야기가 생겼으려나. 자신과 자식의 일생에 한 번밖에 없을 날이라고 가정해서, 날을 고르고 고르려는 부모의 심정을 내가 헤아려야 하려나. 두 분 다 날씨가 중요한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성장하신 것도 내가 이해해야 하겠지. 그래. 그래야지.





가장 큰 어르신인 그이의 외할머니 댁으로 갔다. 93세의 왕할머니는 정정하게 노인정을 혼자 다녀오시는 길이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이리 늙은 내도 찾아와 주고. 고맙다. 고맙다.”

왕할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나를 반겨주셨고, 할머니가 울자 나는 감정과 상관없이 자동 눈물샘이 작동했고, 예비 시어머니도 울고 그이도 눈가가 빨개졌다.


할머니는 나를 앉혀놓고 손등을 톡톡 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관상도 좀 볼 줄 아시는데, 나는 코가 복코라서 잘 살겠다고 하셨다. (예? 오호 네넵) 아이는 원래 뒤에 오는 자식일수록 똑똑하니 많이 낳아야 한다고 하셨다. (???) 우리 집도 보라며 막내 삼촌이 제일 똑똑해서 나랏일 하고 정치한다 하셨다. (아~ 음 네?) 아이는 셋다 여자라도 괜찮다고, 여자 셋이면 다 똑똑하다고 하셨다. (그렇! 응?) 저 집 딸내미들 보라며 다 이화여대 가고 의사하고 다 똑똑하다고 하셨다. (아.....) 결혼은 3월은 음력 2월이니 안된다고 하시고, 1월은 설이 있어서 안 되겠다 하시고, 2월은 본인이 결혼했는데 과부 되었다며, 2월은 과부 된다고 안 된다고 하셨다. (ㅋㅋㅋㅋ) 이쯤 되자 예비 시어머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으로 왕할머니 입을 막았다.


나의 왕할머니! 세계관 최강자였다. 왕할머니는 진짜 왕이었다. 본인의 자식으로 입증한 '뒤에 오는 자식이 똑똑하다.' 저 집 자식으로 입증한 '딸 셋 낳으면 딸이 다 똑똑하다.' 자신의 삶으로 입증한 '2월에 결혼하면 과부 된다.' 같은 조항들은 왕할머니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작은 시골 마을에 오래 사시다 보니 몇 개의 경험들은 왕할머니의 진리가 되었다.





만날 날을 정하는,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왕할머니를 만나자, 사람이 오는 일은 그 사람의 인생까지 오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각자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양가의 인간들이 한 날짜에 모이려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인간들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인생을 축복해주려고 한 날짜에 모일 것이다.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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