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대여점과 도서 대여점을 드나들던 사춘기

by 희망메이커 지니

얼마 전에 본 영화에 도서대여점이 나왔다. 학창 시절 자주 드나들던 도서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 꿈꾸기도 했었는데, 성인이 되고 보니 그 많던 도서대여점과 비디오 대여점이 사라지고 있었다.


바야흐로 밀리니엄, 인터넷시대의 도래였다. 그땐 도서관에서 직접 자료조사를 하며 리포트를 써야 했었는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챗지피티의 도움으로 쓰고 있지 않을까.


무튼 내 청소년기의 유일한 낙은 도서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려다 보는 것이었다. '은비가 내리는 나라'의 이미라 작가를 참 좋아했었더랬다. 나나, 미미, 윙크 같은 월간 만화잡지도 창간호를 사거나,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해가면서 출시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교 후에는 친구들이랑 컵떡볶이나 어묵, 순대를 간식 삼아 먹고 집에 갈 때 계란 한 두 개를 사서 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특별히 의미 있는 저녁은 아니었다. 엄마는 항상 새벽에 들어왔기 때문에 여동생과 나는 라면을 주식으로 했다.


엄마가 오랫동안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아 새로운 곳으로 일하러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엄마가 새로 일하러 나가는 식당은 집에서 멀지 않았지만, 사춘기 소녀들이 갈 리가 없잖은가.


6학년 겨울에 엄마는 아빠와 헤어졌고, 중 2 때는 새아빠랑 헤어졌다. 새아빠는 암에 걸린 걸 알고는, 우리를 빛이 전혀 들지 않는 반지하로 이사시켜 주고 떠났다. 미안하다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그렇게 지하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릴 땐 옥탑, 후에는 반지하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후에 내가 성년이 되고 나서야 지긋지긋한 반지하를 벗어나게 되었는데, 또 내가 결혼하고 난 후에 엄마는 반지하로 이사해서 살게 되었다. 아무래도 모은 돈이 없으셨기 때문에, 오르는 임대료를 피해 이사한 곳이 또 반지하다. 그 특유의 곰팡이 냄새.. 빨래를 하고, 섬유유연제를 뿌려대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는 명절마다 중국영화를 틀어주었다. 황비홍이나 성룡 영화 같은 게 인기였고,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중국배우들 인기도 많았다. 나도 천장지구라는 영화를 보고, 곽부성이라는 중국배우의 책받침을 만들어 다녔다. 곽부성이 나온 영화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죄다 빌려보고, 팬클럽에도 가입해서 상영회도 보러 가기도 했다.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방은 불을 끄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러고는 곽부성의 노래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 워아이니, 짜이찌엔 같은 중국어 기본회화도 그때 책을 사서 외웠다.


음악 테이프는 꽤 비쌌다. 그래서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해서 나오길 기다렸다가 녹음 버튼을 눌렀고, 또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 학을 접어 연예인에게 보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아날로그였다.


그때 나를 살게 했던 건 책과 영화였다.


아마도 사춘기 시절 겪은 일련의 가정사로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게 만화책이고, 영화배우였던 것이리라.


현실이 버거워질 때마다 나는 아직도 이야기를 찾는다. 잠시 다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 숨을 고르고 돌아오는 일.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그렇게 살아남는 법을 배운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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