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채집을 하던 여름 방학

1990년대

by 희망메이커 지니

국민학교 시절 여름 방학의 기억은 시골 생활로 가득하다.


방학이 되면 시골에서 할머니가 나와 여동생을 데리러 무궁화호 장항선을 타고 올라오셨다. 할머니는 한복을 입고 다니셨는데, 허리춤에는 항상 무슨 끈인가가 매어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은색 비녀로 쪽지고, 보자기에 참기름이며 들깨 등을 넣은 보따리를 한 아름 들고서.


한 번은 시골에 내려갈 때 입석이어서, 문 쪽의 틈에 우리를 앉히고서 할머니는 서서 가고 계셨는데 어떤 분이 자리를 양보해 주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기차 통로에는 매점 아저씨가 다니며 삶은 계란이나 오징어, 사이다 같은 걸 팔았다. 삶은 계란 하나와 사이다 하나면 여행길이 무척 신이 났었다. 혹여 기차 끄트머리 칸에 타게 되면, 통로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는 풍경을 직관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


시골은 영등포역에서 두어 시간.. 내려서는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은 더 들어가야 나오는 곳이다. 그마저도 한 시간에 한 번씩 다니는. 다행히 집 가까이에 국민학교 하나와 보건소, 슈퍼가 하나 있어서 지금으로 치면 생활편의시설은 다 갖춰진 셈이라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기차에 대한 추억과 시골 냇가, 사촌 동생들과의 여름 방학은 무척 재미있었다. 시골에는 작은 아빠, 작은엄마, 사촌 동생 둘이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냇가에서 놀고 있노라면 어른들이 반들반들하고 넓적한 돌에 빨래를 올려두고 방망이로 두드려가며 빨래하러 오곤 했는데, 세탁기가 없었나 보다.


그 빨래터 냇가에서 동생들과 나는 발장구 치고 놀고, 고동을 잡으러 상류로 상류로 올라가며 놀았다. 논두렁에서 작은 개구리를 잡기도 하고 옥수수를 쪄먹거나, 할머니가 어디선가 일해주고 얻어온 참외나 수박을 먹었다.


화장실은 푸세식이라 혹여 발이 빠지거나 아예 사람이 빠질까 봐 염려되었기 때문에 밤에는 요강을 사용했다. 시골의 밤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플래시 없이는 나갈 수 없었다. 그 푸세식 화장실의 변이 가득 차면 작은 아빠가 밭에다 거름으로 뿌리고는 했다.


그때는 방학숙제가 참 많았다. 그림일기는 매일 날씨를 기록해야 했는데, 한동안 밀려서 동생들이랑 기억을 더듬어가며 썼던 기억이 난다. 탐구생활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도 EBS를 봤던가. 대신에 매일 딩동댕유치원이나 오후에 해주는 만화 한 두 개를 보던 기억이 난다. 날아라 슈퍼보드나 영심이, 아기공룡 둘리.


그리고 대망의 곤충채집! 전국의 곤충은 그때 다 죽었다고 보면 된다. 한 반에 50여 명, 13개 반의 국민학교가 당시에 많이 있었을 텐데, 전국의 국민학생들이 일제히 여름방학을 맞아 온갖 곤충을 잡아 죽인다. 개학해서는 별의별 곤충 잡아온 걸 서로 자랑한다. 아마 그때 천연기념물 나비 같은 게 많이 사라졌을 거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잡은 애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거에 큰 욕심이 없는 나는 대충 잡아 모았는데, 어떤 아이들은 정말 예쁘고 화려한 곤충도 많이도 잡아 왔다. 다치거나 하는 애들도 많지 않았을까. 독이 있는 곤충을 잡았다면 말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정말 정글의 시대였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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