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을 걷던 이십 대

by 희망메이커 지니

이따금 친구들과 정동극장에 심야영화를 보러 가고는 했다. 그 시절의 정동길이 유난히 좋았다. 쉬는 날이면 이유 없이 그 길을 찾았다.


심야영화는 세 편에 만 원이 채 안 됐던 것 같다.
시급이 이천 원, 이천오백 원쯤 하던 때였다. 우리는 정동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하며 밤을 보냈다. 새벽이 되면 정동길을 걸으며 끝도 없는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아침 첫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새벽의 정동길은 무척 아름다웠다.
특히 여름밤의 정동길은 지금도 문득문득 가고 싶어지는 시절이다.
풀 냄새, 시원한 바람, 고즈넉한 덕수궁 돌담과 길가의 상점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좋아했던 정동길을 이후 딱 한 번 다시 가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감성은 아니었다.
.. 일로 가서였을까?.. 낮에 가서였을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여름밤에 가고 싶다.
정동길 새벽 공기, 정말 좋았는데.


서울에서 지방으로 대학을 다닌다는 건 등록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왕복 교통비, 식비, 교재비 같은 것들. 수업이 끝난 뒤 아르바이트를 해도 생활비를 대기엔 늘 부족했다. 그렇다고 내가 수업을 잘 따라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전공과목에서 C학점을 받고서야 아, 나는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우울해할 틈도 없이 다음 학기 등록금이 없었다.
그즈음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가야 했다. 할머니는 십여 년을 치매로 고생하시다 가셨는데, 내 어릴 적 기억의 대부분이 할머니여서 그 상실이 무척 컸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고, 학교도 나가야 했다.


때마침 6월이었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휴학계를 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채로 아르바이트만 전전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던 정동길의 밤은 끝났고,

이제는 내일의 아르바이트를 걱정해야 하는 날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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