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 많은 놈 굶어죽는다"
"재주 많은 놈 굶어죽는다."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참 자주 들었던 말이다. 뭐 하나 깊이 있게 하지 못하는 너 같은 아이는 제대로 된 직업을 못갖게 된다는 뜻이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피아노와 서예로 전국대회에서 입상했다. 노래를 좋아해서 가수를 꿈꾸기도 했고, 가요를 작사하기도 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소설을 쓰거나 추상화를 그려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 수학과 과학 경시대회에서도 입상했다.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웅변대회에 나갔고, 남들을 웃기는 걸 좋아해서 개그맨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부모님은 공부에만 집중하길 바랐다. 나는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아이였다.
"엉덩이를 무겁게 붙이고 하나를 열심히 파야 되는데, 너는 너무 가볍게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다."
친부모에게 그런 모진 말을 들었다. 가끔은 스스로 내가 깊이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했다. 회사에서 승진도 하고, 임원도 되고, CEO까지 되었지만, 이건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이직은 디메리트였다
"너는 왜 한우물을 파지 못하니?"
이직을 할 때마다 엄마는 나를 꾸짖었다. 이직을 수차례 해왔다는 것만으로 하나를 꾸준히 못하는 사람, 쉽게 질려하고 깊이가 없는 사람, 심하면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쉬웠다.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이었다. 그때 이직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경력직 채용 공고에는 "이직이 많지 않은 자"라는 조건이 버젓이 명시되어 있었다. 경력직은 아무리 대리나 과장, 그 이상의 직책으로 입사하더라도 중고 신인처럼 "안 쳐주는" 경우가 많았다. 공채가 있는 대기업에서는 적응의 문제를 떠나 승진에서도 불리했다.
내가 새 명함을 꺼내면 친구들은 "네 명함 세 개째야" 하며 웃었다.
나 스스로도 정착하지 못하고 아직도 불안하게 떠도는 건 아닌지, 왠지 모를 죄책감을 지니고 살았다.
사업가에서 직장인으로 전환하다.
나는 애니메이션 작가 3명과 함께 회사를 창업했다. 지분 40%를 가진 1대 주주로 경영을 맡기로 했다. 회사는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작가들을 통해 원화 작업 의뢰가 들어왔고, 실무는 작가들 위주로 진행되었다. 회사는 문제없이 매출을 올렸고, 새로운 작가들이 입사하면서 회사규모는 점점 커졌다.
그렇다면 사장으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실 나에게는 더 큰 꿈이 있었다. 단순히 하청을 받아 원화 작업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우리만의 고유한 창작물로 작품을 출시하고, 캐릭터를 브랜드화 하여 IP 사업을 하는 회사로 키우고 싶었다. 디즈니처럼, 산리오처럼. 우리만의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그것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것.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조직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비전은 있는데,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아직 대학을 갓 졸업한 초보창업자, 경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열정만으로는 부족했다.
좋은 사장이 되려면 사업 비전을 제시하고, 영업도 확대하고, 조직력도 강화해야 할 텐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이대로 사장 노릇을 하는 것은, 마치 지도 없이 항해하는 것과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아직은 더 배워야겠다고. 나중에 좀 더 좋은 사장이 되려면, 진짜 경영인이 되려면, 제대로 배워야 했다. 그러려면 타 기업에 입사해서 사원부터 시작하자.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업은 어떻게 하는지, 비전은 어떻게 만들고 실행하는지, 사람은 어떻게 뽑고 키우는지, 그 모든 것을 현장에서 배우자.
그렇게 나는 직장생활의 문을 두드렸다. 창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잠시 미뤄둔 것이었다. 언젠가 다시 사업을 할 때,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나은 경영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으며.
"첫 번째 커리어로 평생 가는 거다"
이직을 준비할 때마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첫 번째 커리어로 평생 가는 거야. 화장품으로 시작하면 화장품 업계로만 이직할 수 있어."
범위를 좁히는 조언이었다. 전환의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는 말이었다.
나는 항상 생각했다. 왜 안 되지? 누가 태어나면서부터 그 업계에서만 일하라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왜 안 된다는 말로 내 도전을 막는 걸까?
오기가 생겼다. 내가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종 업계로도 충분히 커리어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예를 들어, 식품 업계 마케팅 직에 지원할 때였다. 채용 공고에는 분명히 "소비재 업계 경력자면 가능"이라고 써 있었다. "식품 업계 경력자”는 우대사항 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화장품도 소비재다. 소형 가전(카메라) 같은 전자기기도 FMCG는 아니지만 소비자를 직접 상대한다는 점에서 매우 연결된다고. 그래서 채용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도전했다.
그때도 주변에서는 말했다.
"식품은 식품만의 특징이 있어서 다른 소비재 출신을 잘 안 뽑아. 너는 서류에서도 바로 떨어질 것 같은데?"
기세를 꺾는 말들만 했다. 실제로 저런 말을 하던 사람들은 일할 때에도 보수적인 경향이 확실히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도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부정적인 말을 한다.
면접장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왜 이직하려고 하나요?"
면접관이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경력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걸, 나는 여러 번의 면접을 거치며 배웠다. 면접에 합격하는 나만의 기술이 있었다.
대리 이하 주니어일 때는 열정과 학습 속도를 강조했다.
"더 성장하고 싶습니다. 이 회사는 배울 것이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는 빨리 배우는 편입니다. 남들이 해 놓은 포맷이 있으면 그것을 적용하고 더 개선하는 일에 자신 있습니다. 이직 후 업무 적응에도 문제없을 것입니다."
주니어 시절의 면접은 비교적 단순하다. 내가 얼마나 빨리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지.
그리고 이 기회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태도와 열정을 보여주면 가능했다. 아직 경력이 짧기 때문에 완벽한 스킬보다는 잠재력과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면접 전략은 달라져야 했다. 과장이상급 경력자 면접에서는 경험의 연결과 구체적 제안이 KSF(Key Success Factor)였다. 실제 전 직장에서의 업무 경력이 지금 회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식품 업계로 이직할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화장품 업계와 카메라 회사에서 대소비자 마케팅, 상품 홍보, 유통 프로세스, 고객사와의 영업을 담당했습니다. 식품이라는 아이템만 다를 뿐, 업무의 스킬은 분명 기존 직장에서의 경험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그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구체적인 제안을 가지고 갔다.
어떤 면접에서는 직접 기획한 신제품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어떤 면접에서는 광고 키워드나 슬로건을 만들어 가서 보여줬다. 어떤 면접에서는 이렇게 제안했다. "온라인 판매가 앞으로 대세가 될 텐데, 자사몰을 기획해 보면 어떨까요?"
또 어떤 면접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물류 센터를 외주로 주시는 것 같은데, 자가 물류 센터를 갖게 되면 자동화 설비 등을 투자하기에 용이하여 물류를 체계화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거기다 나중에 땅값이 상승하여 회사의 자산 가치도 올라가는 덤을 얻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사업적인 제안을 덧붙이는 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실패할 때도 있었다
물론 항상 성공한 건 아니었다.
어떤 면접관은 이런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건방지게(?) 사업적인 제안을 하는 후보자를 "좀 튄다"고 생각하여 떨어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를 채용해 준 회사들의 면접관들은 달랐다.
'스마트하고 시야가 넓은 후보자가 우리 회사에 대해서도 공부해 오고, 기세 좋게 사업적인 제안도 하네? 정말 의지가 있어 보이니 한번 기회를 줘볼까?'
이런 호기심과 호감을 갖고 나를 채용해 주셨던 것 같다.
후에 내가 면접관이 되어 사람을 뽑아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 있다. 결국 면접에서 중요한 건 두 가지였다.
첫째, 그 전 회사에서 얼마나 퍼포먼스가 좋은 직원이었는지.
둘째, 지금 이 기회를 잡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열의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시니어일수록 한 가지가 더 중요했다.
셋째, 자신의 경험을 우리 회사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능력.
나는 정말로 하고 싶어 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것이 내가 채용면접에서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항상 자신감이 넘쳤던 건 아니다.
주변에서 "안 될 거야" "너는 서류도 떨어질 거야"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스스로 모티베이션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본인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때로는 나도 의기소침하고 나 자신을 의심할 때가 있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이건 너무 무모한 도전은 아닐까?
엄마 말이 맞는 건 아닐까? 재주 많은 놈이 정말 굶어죽는 건 아닐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엉덩이를 무겁게 붙이고 하나를 열심히 파야 한다"고 꾸중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뭔가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질 때마다, 내 안에서는 죄책감이 올라왔다.
나는 깊이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CEO까지 되고 나서도,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이룬 게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야."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조언했다.
나는 여러 번 커리어를 전환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창업자(1대 주주)에서 시작해, 화장품 브랜드 마케터, IT 컨설턴트, 식품 마케팅, 그리고 CEO까지. 결과만 본다면 직급을 올려가며 커리어를 전환해 왔으니 성공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체는 부침과 실패가 더 많았다. 그러나 단계단계를 겪으며 지식과 역량, 경험과 인맥을 쌓아왔다는 것은 큰 결실이 아닐 수 없다.
보수적인 커리어 시장에서 업계를 바꾸었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새로운 업계에서 3년 이상 정착하며 경력을 쌓았고 단계단계마다 승진해왔다는 것이 성과였다.
그러나 매번, 모두가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며 뜯어말렸다.
"첫 번째 직장이 중요해. 왜냐하면 첫 직장의 업계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거야."
열변을 토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문과생이 IT 회사에 들어갈 수 없을 거야. 입사를 한다고 해도 컨설턴트 일을 할 수는 없을 거야."
"외국계 기업은 컬처럴 핏이 달라. 외국계 출신이 아니라면 이직하기가 어려워."
"식품은 전문성을 요해. 대기업 식품 업계, 특히 제조를 하는 기업의 마케팅으로는 갈 수 없을 거야."
"신입부터 들어온 사람이 아닌 경력직이기에 임원이 되기 어려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정말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