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er.1-2

나는 커리어 연쇄 피보터

by 쎄오 스텔라

화장품 브랜드 창업팀에서 배운 것


사실 나의 첫 직장 선택부터 남들과 달랐다.

"창업 멤버를 찾습니다"라는 채용 공고가 눈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것이 매력적으로 다 가왔다.

단순히 대기업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큰 조직의 작은 파트로 일을 배워가며 15 월급을 받는 삶보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고 가치를 창출하는 보다 역동적인 사업의 일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 더 매력적이었다.

또한 0에서부터 시작하여 엑시트하는 과정까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배움의 기회였다. 브랜딩, 상품 라인업, 상품 기획—포뮬라, 텍스처, 컬러, 패키징, 프라이싱, 네이밍, 홍보/ 마케팅, 판매 계획, 런칭 프로모션, 매장 계획 및 매장 입점 영업, 마케팅, 판촉, 구매, 유 통, 물류, 판매, AS까지. 밸류체인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나중에 내가 브랜드를 창업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화장품에서 IT로: 불가능하다던 첫 번째 이직


화장품 브랜드 팀에서 3년을 일한 후, 나는 전혀 다른 분야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미국 ERP 업체 JD Edwards의 코리아 오피스(국내 한 대기업의 자회사가 운영)였다.

나중에 좋은 CEO가 되려면 2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했었다. 회사를 운영하려 면 꼭 필요한 것이 매출을 일으키는 활동—상품(서비스), 영업, 판매(유통)—이고, 운영에 꼭 필요한 부분이 인사, IT, 전략, 물류라고 생각했다.

이 기능들을 모듈처럼 하나씩 전문 성을 갖추자는 생각을 했다. 이때부터 나는 '커리어 패스를 설계한다'는 개념을 가졌던 것 같다.

외국계회사나 글로벌 브랜드에서 일해 보고 싶은 점도 있었고, 문과생으로서 취약한 IT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운이 좋게도 무난히 합격했다. 채용 공고로 올라온 포지션이 고객 서비스 매니저 롤이었고, 처음에는 단순한 문의와 고 객 홍보, B2B 마케팅 행사를 기획 운영하는 업무가 주였기에 IT에 해박한 지식이나 많은 경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서는 이 포지션을 뽑아 ERP 컨설턴트로 육성할 계획이었기에 기왕이면 IT 계 열 전공자를 희망 했었다고 한다. 고객 지원과 마케팅도 기술적인 이해도가 있어야 가능 한, 일종의 기술 영업이기 때문에 전공자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합격했다.

입사 후 원하던 대로 ERP와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하향지원을 하여 이종의 업계에 발을 들인 후 거기서 원하는 커리어로 성장 16 하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주변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그 일도 시도하면 방법이 있다.


글로벌 카메라회사로: 기회가 보이면, 최선을 다해 잡아야 한다


ERP 회사에서 일하던 중 회사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미국 본사가 대형 IT 솔루션 기업 인 O사에 인수합병된 것이다. 한국에서 독점적인 벤더이자 컨설팅 오피스였던 우리 회사 가 O사의 한국 법인으로 통합될 것인지, 컨설턴트들은 파트너로 남는 것인지, 고용승계 가 되는 것인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회사 내부는 뒤숭숭했다. 일부 동료들은 이 직을 결심했고, 일부는 합병 후 통합 과정을 지켜보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그런 불안한 시기에 뜻밖의 연락이 왔다. 내가 담당하던 글로벌 클라이언트 중 하나인 C 카메라회사 싱가포르 법인에서였다.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하고, 우리 회사 ERP를 잘 알 며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기획할 수 있는 PI(Process Innovation) 컨설턴트를 찾고 있다고 했다. 내년에 한국 법인을 설립할 예정인데, 그 창립을 준비하는 TF 멤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주변에 적합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JD(직무상 세)내용를 검토하고 사람들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면 어떨 까?" 상대방이 원하는 경력 수준은 나보다 훨씬 고연차 였다. 하지만 업무 자체는 자신 있는 영역이었다. 언젠가 ERP 컨설팅에서 배운 것들을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직접 활용해보 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다.

지금 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쩌면 이것이 좋은 기회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가포르의 클라이언트에게 나를 셀프 추천했다. ERP 회사 출신이라는 후광 효과 덕분인 지 서류는 통과되었다.

1차는 전화 인터뷰로 실무 테스트를 본다고 했고, 이를 통과하면 약 한 달 후에 일본 본사의 임원과 대면 면접을 최종적으로 보게 된다고 했다. 1차 실무 테스트는 한 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다양한 측면의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우리 제품만 큼은 많이 공부했던 나는 자신 있게 답변했다. 면접관은 Vincent Si라는 IT 디렉터였다.

며칠 후, 그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나는 당신을 선택했어요. 싱가포르에서 봅시다." 이 빈 센트씨가 카메라회사에서 나의 첫 사수가 되었다.

최종 면접을 보러 온다는 임원진은 일본의 마츠다 부장, 켄지 부사장이었다. 영어가 회 사의 공식 언어였지만, 일본계 기업이었기에 일본어를 잘한다는 것은 분명 큰 플러스가 될 것 같았다. 최종 면접까지 한 달이 남았다.

그때부터 나는 새벽 7시 타임의 일본어 수 17 업을 듣기 시작했다. 당시 내 일본어는 초급 수준이었지만, 한 달이면 면접에서 일본어로 포부를 말할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일본어를 공부했고, 주말에는 독학으로 더 연습했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면접 장면을 시뮬레이션 했다. 일본어로 말하고 있는 나 의 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마츠다 상, 켄지 상을 만났다. 면접이 중반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마츠다 상이 내게 질문이 있으면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괜찮으시면 지금부터는 일본어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깜짝 놀 란 켄지 상이 물으셨다. "그럼 당신은 영어, 한국어, 일본어 세 개 국어가 능통한 건가 요? IT쪽에는 다중언어자가 별로 없거든요. 우리 같은 글로벌기업에는 정말 필요한 인재 네요"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일본어는 능통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번 면접을 준비하 는 의미로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입사하게 되면 싱가포르뿐 아니라 일본 IT팀과도 프로 젝트를 하는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어를 잘하게 되면 일의 능률이 오를 것 같아 서 계속 더 공부할 생각입니다."

두 달 후, 나는 싱가포르로 가 C사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회는 갑자기 왔다. 그것도 내 인생이 가장 불확실한 순간에.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내가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그리고 얼마 나 준비할 의지가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의 용기가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MBA 후 전략적 선택, 식품대기업 마케팅

카메라회사에서는 ERP 사내강사, PI 컨설턴트로 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사내결혼을 한 후 회사의 태도가 비합리적이라 느꼈다. 나는 일단 MBA과정에 입 학하며 커리어를 중간점검하는 시기를 가지기로 했다.

MBA를 마치고 다음 커리어를 고민할 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번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MBA는 단순히 학위를 따는 과정이 아니었다. 나는 커리어의 중간단 계에서 역량을 강화하고 다음 레벨로 올라가기 위해 이 과정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MBA 후 다음 커리어는 그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아니 그 이상의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나는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임원까지 성장할 수 있는 직무여야 한다.

둘째, 그럴 가능성이 실제로 열려 있는 기업이어야 한다. 말로만 성장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곳이 아 니라, 실제로 내부 승진 시스템이 작동하고, 전문 경영인을 키우는 문화가 있는 곳이어야 했다. 글로벌 카메라회사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그 회사에서 여성이 임원이 되는 길은, 솔직히 말해서 보이지 않았다. 특히 사내결혼으로 회사를 나와 야 했던 경험은 내게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시스템이 받쳐주지 않으면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MBA 후 다음 커리어를 선택할 때, 나는 신중히 여러 산업,기업을 검토했다.


그때 한 식품기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식품 대기업은 몇 가지 장점이 있었다.

우선, 안정적인 산업이다. 사람들은 경기가 어 려워도 밥은 먹는다. 특히 두부,나물,계란 같은 필수식품을 하는 회사는 더 없이 안정적 이다. 둘째, 마케팅의 중요성이 높다. 식품은 브랜드 신뢰도가 중요한 산업이었다. 셋째, 당시 식품 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가정간편식, 이커머스유통으로 전환하는 시기였 다. 그 말은 마케팅과 시스템 전문가에게 기회가 많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지원한 회사는 여성이 경영임원이 된 전례가 있었고, 향후 여성리더쉽을 더 키우겠다는 선언을 한 회사였다. 그리고 당시 MBA 채용박람회에 참여할 정도로 MBA나 우수한 기업의 경력직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회사가 전문 경 영인을 키우려는 의지가 있다는 신호였다. 여기라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가능성에 배팅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입사 7년만에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식품대기업에서 전문경영 CEO로 : 사장이 되는 또 다른 방법


창업이 사장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전문경영인이 되는 것도 비즈니스 오너, 사장 이 되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나는 화장품회사, 카메라회사를 거쳐 식품회사로 이직했 고, 그곳에서 마케팅 임원으로 일하다가 스타트업 식품 이커머스 회사의 CEO 포지션 오 퍼를 받았다.

처음부터 CEO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원래 창업을 꿈꾸고 내 사 업을 하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직장생활은 경험과 역량을 쌓기 위한 과정이라 고 생각했고, 이 모든 경험이 나중에 내 사업을 다시 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한다는 것이 꼭 내가 오너인 회사여야 할까? 19 전문경영 CEO의 길은 창업과는 다르다. 자본을 대는 대신 전문성을 내놓는다. 투자하고 소유하는 대신, 검증된 경력과 능력으로 기회를 얻고 성과로 보상을 받는다. 어쩌면 창업 보다 소극적인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은 덜하고, 회사가 이미 갖추고 있는 인프라 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오히려 더 많을 수 있다.

여러 회사에서 쌓은 경험과 성과들, 그것을 보고 누군가 내게 CEO가 될 기회를 주었다. 나는 그 오퍼를 기쁘게 받아들였고,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왜 한우물을 파지 못했나?


돌아보니, 나는 한우물을 파지 못한 게 아니었다. 나는 여러 우물을 팠다. 그 우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화장품에서 배 운 브랜딩이 IT 컨설팅에서 빛을 발했다. IT에서 익힌 프로세스 사고가 식품 마케팅에서 혁신을 만들어냈다. 물류 산업에서는 그 모든 경험이 융합되어 전략을 수립하는 데 쓰였 다.

한우물을 깊이 파는 사람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우물을 파며 그것들을 연결하는 사람 도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후자였다.

당신도 한우물을 파지 못한다고 자책하고 있는가?

혹시 당신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너는 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니?" "이것저것 관심만 많고 깊이가 없네." "또 직장을 옮기려고? 이번엔 좀 오래 다녀봐."

혹시 당신도 새로운 분야에 관심이 생길 때마다, 죄책감이 드는가?

혹시 당신도 이직을 고민하면서, 내가 부적응자는 아닐까 의심하는가?

그렇다면 이 말을 기억하라. 한우물을 파지 못하는 것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다.

여러 우물을 파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것이 당신의 강점이다. 이제 그 강점을 기반으로 커리어를 피보팅하자.

2025년 지금은,

"재주 많은 놈, 이제는 굶어 죽을 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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