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그림자

episode. 찬란함 앞에서조차도 어둠은 겁없이 나타난다

by 김주리

No. 2 창문 없는 삶


내 삶의 방엔 오래도록 창문이 없었다.



똑똑똑!

“경수 총각, 안에 있당가? 급한 것 같응게

엄니 전화 좀 싸게 받아 보랑께! 언능!

문틈 사이로 들이치는 이모님의 목소리는 늘

어릴 적 엄마의 잔소리와 비슷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다급한 톤이었지만 말의 온도는

평소 같지 않고 뭔가 차가웠다.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돌려 문을 반쯤 열고

”네? 무슨 일이세요? “


말하는 경수의 얼굴을 보고

이모님은 빨리 전화받으라고 말해주러 온 걸 잊은 듯했다.

“ 아니 근디 거시기하게 뭔 땀을 그랴게 흘린다쌌냐?

아따 난 얼어 죽게 생겼는디 학생들 추울까벼

볼러를 겁나게 돌려버렸네…

이놈의 하나 쓰잘데기 없는 인정머리땜시”

경수 총각은 전기장판 하나 사라꼬 그라게 말을 혀도......

허긴 방세도...(에휴~ 한숨)

쯧쯧쯧.( 차마 겉으로 말 못 하고 속으로 혀를 차며 화를 삭인다).

이모님에게선 생활력 강한 억척스러운

아줌마의 모습이 느껴졌다.


부스스한 머리

초췌한 낯빛

다크서클이 온몸에서 보일 것 같은

피곤해 보이는 표정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자신의 키보다도 모자라 보이는 침대에 반쯤 누워

대꾸할 기력조차 없던 그는,

이모님의 영양가 없는 잔소리를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대답도 안 하다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이모님의 하소연은 반쯤 귓등으로 흘리고,
급하게 방문을 열고 좁은 복도로 뛰어가.
출입문 근처 사무실 전화기로

걸음을 옮겼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전화기 뒤로 들려오는 웅성거림.
순간,

무언가 때려 부수는 듯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놀란 경수는 큰 목소리로

“엄마? 무슨 일이에요?”

“경수야! 어떡해 어떡해… 큰일 났어… 흑흑흑…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아아아아....!!!!!!!!!!.

제발 그만하시라고요~~~~~~오오오”

엄마의 숨도 쉬기 힘들어 보일 정도로 겁먹은 목소리 뒤로
낯선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용료 내라고 오! 이 할망구야! 어?

한국말 못 알아듣냐고 아이씨 진짜....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고 18..’


뚜뚜뚜......

전화는 끊어졌지만,

부모님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음이 확실했고,

경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언제 와있었는지,
뒤통수에 이모님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경수 총각… 나 글케 나쁜년 아니랑께
총각도 알자녀 …”


툴툴거려도 따스함이 항상 내재되어 있는 이모님의 말투가

오늘은 정말 달랐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쳐져서 항상 순해 보이던 눈매를 치켜세우며 다시 쏘아댔다.


“경수 총각!

힘든 거 잘 안당께

근디 이게 뭐시당가? 어?
요즘 학생들이 김치가 사라졌냐 정 없다 떠들어쌍께
싸게싸게 냉장고에 넣어놓는디 왜 그냐 했더니

(휴... 한숨이 땅이 꺼질 듯 )

요거 경수 총각이 혼자 다 묵었는가?

( 김치 양념들만 지저분히 그릇 안쪽 주변에 묻어있는 빈 김치통을 들이대며)
”아따… 땅 파서 장사 헌 줄 아냐고! “

이모님의 조금은 원망스러운 목소리에 경수는 뭐라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는 거 외에

얼굴이 화끈거려 아무 말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킬 건 지켜야지... 안 그냐고..”


그 소리를 듣던

경수는 갑자기 이모님 바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모님, 죄송합니다. 정말… 제가 조만간 밀린 방비 다 갚을게요.
지금 급히 가야 하는데 택시비가 없어요… 제발..
택시비만 빌려주시면… 진짜 꼭 이자까지 쳐서 전부 갚겠습니다.”

경수의 입술이 떨렸지만,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알 수 없는 조금은 복잡한 심정이 든 이모님은
중년과 갱년기가 합쳐져 만들어 놓은

휑하고 주름으로 가득 찬 앞이마를 긁적이며,

“아니, 뭐… 뭐..

누가 김치 그거 좀 묵었다고 무릎 꿇으라혔당가?
사람 와그리 무안하게 만든다냐…”


어색해지던 그 순간,

이모님의 남편으로 보이는 허름한 남자가
파란 소주병을 흔들면서 노래를 부르며 들어왔다.

“다아아알 저어문…쏘오 양장에… 에헤헤헤헤헤헤헤~

히히히 쏘양장이지 암 히히히 밤에는 술이 최고야 아흐 좋타~!”

이모님의 얼굴은 곧 폭발할 듯한 화산분화구 같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이...........이............이............... 이 미친놈이!

여그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온다냐? 싸게 쳐 못 나간다냐?!”


술에 찌든 이모님의 남편은

다 풀린 눈

한쪽만 추켜올린

비대칭 입술

술주정뱅이답게

볼터치를 얼굴 전체에 덕지덕지 바른 듯

핑크에 레드를 한 방울 섞은 듯한 버얼건 얼굴에

넌 뭐냐는 표정으로

경수의 얼굴을 흘끗 쳐다보더니,

“나간다고 나가 아줌마야!

화내면 늙지요오~~~~~

사장니임 말씀 잘 듣겠습니다 히히히히히히~~~~~

저 남편님은 지금부터 귀이하신 부인님께! 충성!하겠습니다~~~~~~

충성!

( 갑자기 혀 꼬부라져서 귀여운 목소리로

손을 귀 근처에 삐뚤어지게 댔다가

입꼬리에 양손을 대고 올리며)

스마이일.. 하하하하 ”


“술값만 있으면 천국이지요오오...”.

술값 조금 주면 안잡아먹지! 안줘도 안잡아 먹나? 하하하

주라고 주라고~~~~~~~술값 좀 주세요~ 사장님..

꼬부라진 혀로 노래 부르듯 말하더니 남편은

휘청거리는 몸으로 사무실 문을 밀다 넘어졌다.

이모님은 지폐를 꺼내 바닥에 고꾸라진 남편의 얼굴에 말없이 던졌고,

그녀의 남편은 지폐를 쥐더니 술 안취한 사람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

지폐를 바지 주머니에 구겨넣고

"고맙습니다 우리 여사니이암~~~그대 없이는 몬살아 나혼자서는 몬살아 당신없인 못살아"

노래를 부르며 그는 힘겹게 문을 밀고 나갔다.


기가차 할 말이 없다는 듯한 표정의 이모님은

잠시 정적이 흐른 어색함을 깨고 , 아직도 무릎을 끓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겁에 질린듯한 경수의 얼굴을 보고

전화내용을 짐작한 듯 말했다.


"부모님껜 잘해도 후회 몬해도 후회혀!

살아계실 때 잘혀 난중에 펑펑 울어쌋지말고!

이모님은 경수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

택시비로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지폐를 쥐어주었다.


“ 여유되면 곱절로 꼭 갚으랑께

아따 판사 선생님들은 돈 마니 벌자녀 그자녀? 맞자?


" 이 춘날 살아보겠다고 공부 허느라 고생혀는 다 늙은 총각을

저 그지 화상처럼 내치지는 않혀.
총각이 돈 안 갚고 튈 나뿐 놈 아닌 거 나가 누구보다 잘 안당께…
언능 시험 떡붙어!

나무돈 훔쳐 뿌는 놈들 다 잡아다가 땅땅땅 해갖고 감방에 다 쳐 넣으라고~"


그라고....


” 싸나이가 그라게 암때나 무릎 꿇는 거 아니야!

알았제!

다메 각시될 아가씨 앞에서만 꿇으라고 “

말투는 차가웠지만

이모님의 마음은 그 반대였음을 경수는 알 수 있었다.

고맙단 말조차 나오지 않아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이모님이 주신 택시비를 손에 꼭 쥔 채 정신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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