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우면서 성장하는 구조

배움

by Steve Kim


가끔 모임에서 만나는 창업자들은 스스로 “내가 전문가가 아니어서 투자를 못 받을까 봐 걱정된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 창업자가 학업을 통해 이미 전문성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거나 관련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해오면서 ‘전문가’로 인정받기도 한다. 실제 전문 자격을 갖춘 사람이 창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전문성은 그들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고, 그 길을 보고 투자자는 투자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 업계는 10년은 일해야 흐름을 안다.”

“B2B는 도메인 지식이 없으면 못 한다.”

“이걸 하려면 박사 학위는 있어야 해.”

그럴싸하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요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창업자 중 상당수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정답은 간단하다. 창업은 배우면서 실행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문 분야 지식이 부족한 건 문제가 아니다. 고객이 당신보다 그 업계를 더 잘 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실행하면서 그 경험을 체화하면 된다. 단 하나 중요한 건, 그 과정을 얼마나 빠르게 반복하고 학습하느냐다.

실제로 성공하는 많은 B2B SaaS 팀은 컨설팅을 하면서 문제를 이해했고, SI(수주 개발)를 하면서 고객 니즈를 배웠으며, 그걸 기반으로 SaaS를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팀은 그 누구보다 도메인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왜냐면 그들은 책에서 읽은 게 아니라, 고객에게 따귀 맞아가며 배운 진짜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CRM을 만들던 10여 년 전에 말 그대로 ‘쌍욕’을 들으면서 제품을 만들었다. 무더운 날씨에 수차례 병원에 드나들고, 수 없이 밀려드는 전화를 받고, 오류라도 나는 날에는 쓴소리를 들으면서도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사과해야 했고 그렇게 제품을 만들어갔다.

병원에서 단 하루도 일해본 일이 없다. 말 그대로 ‘전문성’은커녕 ‘배경지식’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참 용감했다. 그러니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없어도 된다.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학습을 멈추면 안 된다.

무엇보다, 그 학습은 고객과의 대화에서 나와야 한다. 이 업계에서 10년 일한 사람보다, 10일 동안 20명의 고객과 날것의 대화를 한 창업자가 더 빠르고 더 진짜에 가깝다. 결국 창업에서 필요한 전문성은 지식이 아니라 실행력이다. 지식은 채워 넣을 수 있다. 실행력은 그렇지 않다.

창업은 업사이드를 향한 게임이다. 공무원 시험처럼 조건을 따지는 게 아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망하는 게 아니다.

배우지 않아서 망하는 것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6화미래를 만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