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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만든다는 것

배움

by Steve Kim

창업하면서 속으로 수백 번 되새긴 말이 ‘참 먹고살기 어렵다’라는 것이다.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투자자와의 미팅, 백번에 가까웠던 IR은 나의 정신을 꽤나 좀먹고 있었다. 한 때는 IR(Investor Relations)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도 했다. 결국 투자를 받아야만 회사가 운영되는 상황이었다는 것은 우리 제품이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투자금은 한 푼 들어오지 않았지만 주변에 잘 나가는 회사들이 투자받는 소식을 듣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진짜 맞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변에 도움 될만한 이야기는 없는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많은 창업자가 투자자의 말을 ‘기준’처럼 받아들인다. 요즘 투자자들이 어디에 관심 있는지, 어떤 시장이 핫한지, 이 팀은 왜 투자를 받았는지를 분석하면서 자기 전략을 조정하려 한다.

“이번에 투자받으려면 리텐션 지표를 더 끌어올려야 해요.”

“요즘은 AI 안 하면 투자 안 된대요.”

“이런 모델은 이제 안 먹힌대요.”

근데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지금 진짜 잘하고 있다면, 우리가 진짜 성장을 만들고 있다면, 투자자의 기준을 꼭 알아야 할까? 투자자들도 결국 시장의 일부다. 그들도 다른 투자자를 설득해야 하고, 다음 펀드에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니 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팀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보는 눈’보다는, ‘지금 보이는 안정감’에 베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즉, 많은 투자자는 지표의 추종자다. 앞서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금 잘 나가는 팀의 결과를 뒤쫓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준을 맞춰야 할 대상은 ‘지표를 해석하는 투자자’가 아니라 ‘지표를 만드는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진짜 좋은 팀은, 투자자에게 맞추지 않는다. 투자자가 따라오게 만든다. 우리가 시장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고객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고, 매일 숫자를 만들고 있다면, 이 시장의 미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자신뿐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지금 어떤 투자자가 원하는 기준에 우리를 억지로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가 믿는 철학, 전략, 실행의 뚝심을 쌓아가야 한다.

물론, 투자자는 중요하다. 우리는 자금을 통해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고, 이를 위해 외부의 동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순서를 착각하면 안 된다. 자금은 성장의 연료일 뿐, 방향이 아니다. 그 방향은 우리가 정한다. 그게 창업자의 역할이다. 그리고 제품을 이끌고 있는 PO들의 역할이다. 투자자는 수단이다. 우리는 창조자다.

그리고 기준은 우리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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