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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Sep 07. 2019

병적 도박 (Pathological Gambling)

도박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망상

반복되는 사회적 이슈


 도박은 사회면 기사에서 심심치 않게 반복되는 소재이다. 최근에도 유명 아이돌 멤버와 기획사 대표가 억대 도박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비단 연예인들의 문제라기보다는 대기업 임원부터 전문직, 직장인, 주부까지 상습 도박으로 논란이 되는 건 성별, 직종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청소년 사이에서 조차 불법 온라인 도박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어 우려가 된다.



도박의 3+1요소 : 판돈, 운, 보상 + 단시간


 학문적으로 게임이 도박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한다. 소위 "판돈", "운", "보상"이다.


 "판돈"은 내가 이 게임에 내기를 거는 일종의 투자금이다. 처음에는 그만큼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이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이 일종의 스릴을 준다. 손해가 쌓이면 점점 그 투자가 아까워지고 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더 도박을 반복하게 되고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판돈은 이익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붙잡는 족쇄이다. 판돈이 커질수록 내가 얻을지도 모를 이익이 커지지만, 반대로 내가 짊어지게 될 부담도 커진다. 빠져드는 쾌감도 증가하고, 빠져나갈 수 없는 족쇄도 커진다.


 "운"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무작위 확률에 따라 떨어지는 결과를 말한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노력해서 게임에서 이기고 돈을 얻는다면 이건 꽤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나에게 주는 즐거움과 쾌감도 비교적 예상 가능하다. 반면 무작위 확률에 따라 게임에서 내가 이기고 모든 판돈을 가져간다면 이는 예상할 수 없는 행운이고, 그래서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나 쾌감은 배가 된다. 생각해보자. 만약 수학을 잘하거나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도박이 있다면 그건 도박이 될 수 없다. 서로의 능력에 차이가 있다면 결과가 어느 정도 예측이 될뿐더러, 비등한 실력끼리 하더라도 그 결과는 상당한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체스나 바둑, 기억력 게임으로 도박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약간의 내기 시합을 할 진 모르겠지만 거액을 탕진할 정도로 중독이 생기지 않는 건, 이러한 게임에서 이겨도 내 능력이 만든 결과이기에 "운"이 주는 강렬한 쾌감이 없기 때문이다.


 "보상"은 투자와 확률적 승부 이후에 얻게 되는 이익이다. 도박이 되기 위해서는 이 "보상"이 예상할 수 없이 클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도박이 게임 중에 판돈을 올리거나 몇 배의 이익을 만드는 방법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예상 밖의 큰 이익이 강렬한 쾌감을 만든다. 반대로 투자에 대한 이익이 적거나 일정하게 예상이 된다면 자극이 적기 때문에 쾌감도 줄어든다. 적어도 우리가 일반적인 주식투자나 펀드를 도박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운에 맡기는 투자도 아니거니와 이로 인한 이익이나 손해가 일정 범위 안에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자가 도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한 셈이다.


 "판돈", "운", "보상" 이 세 가지 조합이 다 갖추어지면 우리의 뇌는 흥분하고 쾌감을 맛보며 빠져들게 된다.


 다만 이 세 가지 요소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단시간"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도박이 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게임의 과정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긴장과 쾌감, 긴장과 아쉬움, 긴장과 쾌감, 긴장과 아쉬움... 반복되는 게임의 과정 속에 이루어지는 여러 감정이 짧은 시간 내에 반복이 되어야 우리 뇌는 그 사이클에 빠져들며 중독된다. 포커, 섰다, 바카라 등 중독의 요소를 가진 대표적인 카드 도박들은 짧은 시간 안에 한 게임이 끝난다. 원카드, 도둑잡기 등 비교적 시간이 걸리는 카드 게임으로 도박을 한다는 이야기는 생소하다. 윷놀이도 비교적 확률에 의한 게임이니 판돈을 걸고 이긴 사람이 가져가면 도박의 요소가 성립하겠지만 한 판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기에 도박이 되기 쉽지 않다.



즐기는 도박: 유흥이자 소소한 일탈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는 대표적인 도박의 도시다. 동시에 대표적인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많은 볼거리와 화려한 쇼, 고급 호텔이 집중되어 있다. 그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객은 낮 동안 관광을 하고 밤에는 도박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도박꾼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단순한 유흥으로 도박을 즐기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위해 쓸 수 있는 일정 금액을 정해놓고 판돈이 적은 도박을 몇 번 반복하고 돈을 따도 그만, 잃어도 그만이다. 큰돈을 벌기 위한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을뿐더러, 돈을 잃었다고 그 아쉬움에 더 큰 판돈을 걸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도박은 관광지에서의 소소한 즐거움이자 피해 없는 일탈이다. 요즘은 이전보다 좀 줄긴 했지만 예전 명절에 친척이 모이면 저녁 무렵 담요를 깔고 어른들은 고스톱을 쳤다. 판돈을 걸고 누군가는 돈을 따고 누군가는 돈을 잃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판돈이 크지도 않았고 밤새 도박을 이어가지 않는다. 이런 도박은 강렬한 쾌감과는 별개로 친목이고 유흥이다.



병적인 도박 : 도박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망상


 그렇지만 병적인 도박은 다르다. 돈을 얻어도, 돈을 잃어도 끊임없이 도박에 탐닉하게 된다. 돈을 번 이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잃은 이는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딱 한 판만 더"를 반복한다. 중독의 배경에는 도박의 요소로 인한 강렬한 쾌감이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왜곡된 사고가 있다. 바로 도박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돈을 번 이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돈을 잃은 이는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도박을 반복한다. 그 배경에는 자신이 반복되는 도박으로 판돈 이상의 돈을 딸 수 있다는 왜곡된 믿음이 생겨 있기 때문이다. 왜곡된 믿음은 다른 말로 망상이다. 도박의 요소에서 언급했듯 도박에는 무작위 확률(운)로 얼추 공평하게 게임자에게 승률이 돌아간다. 확률적으로 따지자면 게임을 반복할수록 서로 간에 가져가는 이익은 공평하게 수렴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불법 도박판에는 판돈의 일정 부분을 가져가는 하우스 비용이 있다. 일종의 수수료인데, 이 비용으로 인해 게임을 반복할수록 전체 판돈 중 일부는 계속 빠져나가게 되고 결국 게임자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의 전체 양도 함께 줄어든다. 즉, 수학적으로 생각해보면 개인 간의 도박을 반복하면 할수록 돈은 공평하게 나뉘게 되고, 수수료가 있는 도박판에서는 돈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박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잘못된 믿음(망상)이다.



이미 변해 버린 뇌


 병적 도박의 치료가 어려운 건 우리의 뇌가 도박을 반복할수록 생물학적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적 도박은 단지 의지의 문제나 마음 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물리적으로 변해버린 뇌로 인해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로 바뀌어 버린다. 뇌 영역 중에서도 "쾌락"과 "위험 회피"와 관련된 뇌 영역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실제 병적 도박에 중독되어 버린 사람에게 뇌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뇌영상(Functional MRI)을 찍어보면 "쾌락"과 "위험회피"에 관한 뇌 부위의 활동이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다. 즉 웬만한 자극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기에 보다 더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되다. 동시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손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 위험한 행동을 자제하거나 피하지 못하고 그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박의 늪에 들어서면 허우적 대며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끝내 매몰되어 버린다. 도박꾼은 손가락을 자르면 발가락으로 도박을 한다는 건 빈말이 아닌 셈이다.



즐길 만큼 정해 둔 돈을 쓰고, 돈을 따게 되면 그 이상으로 나누어 주라.


 일단 도박판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자신의 자제력을 믿지 않는 게 좋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게 배신 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생활을 하다 보면 자잘 자잘한 도박을 피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직장 상사가 내기 골프를 치자고 할 때도 있고 명절에 어른들이 고스톱을 치자고 한다. 단체관광으로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를 갔는데 저녁에 호텔 방에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라면 두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다.


 첫 번째는 도박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만큼 돈을 쓴다고 생각하라. 도박을 하면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말고 돈을 쓴다고 생각하자는 거다. 가능하다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일정 금액만 판돈으로 사용하고 즐겁게 그 돈을 쓴다고 생각하자. 사전에 도박을 통해 돈을 벌자는 망상을 차단하는 거다.


 두 번째는 혹시 도박에서 돈을 땄다면 번 돈에 자기 돈을 추가하여 주변에 나눠줘야 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우연히 돈을 땄다면 기념품을 사서 같이 간 여행 동료에게 선물이라도 주자. 친구들과 가벼운 고스톱을 쳤다면 이후 밥을 사거나 회식 비용에 돈을 보태도 좋다. 명절이라면 조카들에게 용돈을 두둑이 주자. 이건 일종의 '개평'이 아니다. 도박에서 딴 돈에 자기 돈 까지 보태니 주변에서 의아해하겠지만 이런 행동을 반복하면 상대방 입장에서 더 이상 자극적인 도박을 걸어오지 않는다. 동시에 자기 입장에서도 도박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착각을 없애준다. 도박으로 돈을 벌겠다는 왜곡된 믿음을 봉쇄하는 셈이다.


 곧 명절이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이상한 풍습이긴 하지만 저녁이 되면 또 담요를 펼쳐놓고 삼삼오오 모여 어른들이 고스톱을 친다. 누구는 돈을 따서 기분이 좋고 누구는 돈을 잃어 마음이 상한다. 자! 대한민국 조카들이여. 이 글을 돈을 딴 어른들에게 보여주자. 어른들은 도박에서 딴 돈에 자신의 개인 돈을 더하여 조카에게 용돈을 줘야 한다. 그래야 도박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다. 어른들의 마음은 홀가분해지고 조카들의 지갑은 두둑해질 것이다. 이는 일종의 예방이자 치료이고 응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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