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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rulean blue Aug 22. 2019

어린이집 찾아 삼만리

아이보다 엄마에게 더 필요한 적응 기간

   이사 후 새 집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던 딸아이는 새 친구들도 만나게 될 거라며 들떠있었다. 며칠 뒤 새 어린이집에 방문 상담을 마치고 입소 신청을 했다. 처음 일주일은 낮잠을 자지 않고 점심까지만 먹고 집에 오는 적응 기간이었고 이 기간 동안에는 웃는 얼굴로 등, 하원을 했다. 문제는 낮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눈물의 등, 하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엄마, 나 어린이집 가기 너무 싫어. 무서운 게 많아.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엄마랑 책 보고 찰흙 놀이하고 놀래.


   어린이집 문을 보면 울던 아이는 집 현관을 나서면 울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옷을 입으면서도 힘들어했다. 등원할 때야 엄마랑 헤어지는 것이 싫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하원 할 때 나를 보자마자 서러운 울음을 터트리는 것은 생각보다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은 19명 정원의 국공립 어린이집(0~2세)이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밀착 케어가 가능했고 오래 다녔기 때문에 낯 가리고 예민한 아이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에  새로 옮긴 어린이집은 정원 75명의 민간 어린이집(2~5세)이라서 아무래도 많은 아이들을 계획대로 통솔하기 위한 그들만의 시스템이 존재했다.  


   한 반에 다섯 명이서 아기자기하게 놀던 것과 열네 명의 아이가 와글와글 노는 것은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이다. 남자아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남아 10명  여아 4명)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아직은 낯선 선생님이 정해진 시간에 이불을 깔아놓고 자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부담이었을 수 도 있다. 새롭게 접하는 영어 체육 수업은 흥미로웠지만, 그 즐거움은 낮잠 시간을 힘겹게 보내고 하원 하는 아이의 머릿속에는 이미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추측하는 이 모든 이유가 실체가 되어 아이를 힘들게 했고 결국 아이는 스트레스로 열감기를 앓았다. 또래에 비해 조금 작은 체구였지만 최근에 밥을 열심히 먹더니 키도 좀 크고 볼살도 통통히 올라 통통한 귀여움이 가득했는데 단 이틀을 열감기로 앓고 나서 아이의 얼굴은 다시 갸름해졌다. 


그래, 그렇게 아프면서 너도 크고 나도 크는 거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과 비교해서 여러 가지 마음에 들지 않은 이 어린이집의 여러 방침들과 선생님들의 캐릭터들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등원 때에는 제각각 도착하는 아이들 지도하느라 현관에 나오지 못해도 하원 할 때는 담임 선생님이 나오셔서 오늘 아이의 하루에 대해서 간략하게 전달할 사항이 있다면 전달해주어야 하는데 정작 담임 선생님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다는 점. 그래서 보호자와 선생님 두 분 사이에 전달사항이 돌고 돌아 제대로 전달이 안된다는 점, 수납장이 없어서 교실 문 앞 바닥에 아이들의 가방을 이열 종대로 늘어놓는다는 점, 입소 상담할 때도, 그 이후에도 원장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고 왜 부재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 키즈노트가 밤 9시에 업로드된다는 점(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이 내 아이에 대한 내용도 아니고 전체 학부모에게 쓰는 일반적인 내용이라는 점. 가령, 준비물 안내. 오늘 소풍을 다녀왔다, 정도의 포괄적인 내용이라는 점.)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하원 시키러 가면 아이가 이미 옷을 다 입고 가방을 메고 교실이 아니라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사실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대부분 이해가 되었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이 소규모 운영의 어린이집이라서 선생님들과 보호자들 사이의 소통이 원활했고 선생님 한 명당 담당하는 아이의 수가 적으니 당연히 아이들이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서 키즈노트 업로드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미 중학생, 초등학생의 엄마가 된 동생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내가 무엇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고쳐 생각해야 하는지.

동생은 통학버스가 있는 원에서는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며 하원 시키러 따라 나가기 때문에 같은 선생님이 매번 있을 수 없다는 것과 원래 하원 시간이 3시면 자는 아이를 두시 반에 깨워서 준비를 시킨다는 것. 그렇지만 그 아이들이 현관에 나와 있는 것은 이상하다고 지적해주었다. 키즈노트가 늦게 업로드되는 것에 대해서도 잔업이 많이 때문에 종종 그럴 수 있으나 한 선생님이 반복적으로 늦은 시간에 고작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키즈노트를 업로드하는 것은 원의 방침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생님 개인의 성향이 그러한 거 같다고도 했다. 수납장을 이용하지 않고 가방을 바닥에 늘어놓는 것 역시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도 하였다.


   동생과의 여러 번의 기나긴 통화를 통해서 내가 느낀 것은, 내가 지나치게 전의 어린이집과 현재 어린이집을 비교하며 나쁜 점을 눈 치켜뜨고 찾아보고 있다는 것과 나의 높은 기준을 바뀐 상황과 환경에 따라 융통성 있게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환경은 필연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나의 손이 뻗을 수 있는 거리는 점점 짧아지고 제한될 것인데 나는 여전히 품 안의 내 아이를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될 아이를 내가 무슨 수로 지켜보고 하나하나 보호해준단 말인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적응을 해야 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바뀐 상황을 아이보다 먼저 이해하고 내다보고 의연하게 대처해서 아이가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않게 해주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하니 아이의 눈물 앞에 나도 같이 눈물을 보였던 것이다. 

   

   어린이집의 시설이 좋고 규모가 크고 특별활동이 다양하게 준비가 되어 있어도 담임 선생님의 성향이 천성적으로 아이를 사랑하기보다는 업무를 완벽하게 하는 것에 집중된 사람이라면, 내 아이를 세심하게 살펴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반대로 특별활동이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아 아이의 교육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아도 선생님이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껴서 한 명 한 명 눈 맞추며 이름 불러주고 그 아이의 성향에 맞는 놀이를 제공하며 이끌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면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한 것을, 내 아이의 일이다 보니 눈 앞에 바싹 들이대고 세세하게 뜯어보려고만 했지 전체적은 흐름을 읽지 못했다. 이런 성향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4년 사이에 어느새 나는, 내 아이는 내가 지켜야만 한다!!라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그저 어느 평범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는 오늘도 울며 등원했다.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더니 선생님에게 가지 않고 나에게 와락 안겨 큰 숨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눈물이 흐르는 걸 참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이 들어가자고 손을 잡았지만 확 뿌리치는 아이를, 며칠 전 같았으면 당황해서 떼어냈을 테지만 오늘은 의연하게 말해주었다.


오늘 금요일인 거 알지? 오늘만 씩씩하게 다녀오면 주말 동안 아빠 엄마랑 신나게 놀 수 있어. 오늘 하루만 더 용기 내줘. 알았지? 엄마가 10초만 꼭 안아주고 갈게.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10초 뒤에는 선생님 품에 안겼고 나를 보면서 엄마아아아아앙!! 하고 울고 들어갔지만 오늘은 마음이 조금 덜 무겁다.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걱정하는 동안에 아이랑 뭘 하고 놀아주는 게 좋을까를 생각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걱정한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스물셋에 아이를 낳아도 서른다섯에 아이를 낳아도 똑같은가 보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아이가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만큼, 엄마도 엄마의 위치에서 맺는 관계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야 하고 적응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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