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혼돈
말없는 남자가 좋았다. 카리스마 있는 남자가 좋았다. 자잘한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는 남자들이 덜떨어져 보였고,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남자에게 은근히 끌렸다. 내가 사귄 남자들은 ‘칼있쑤마’ 작렬했다. 사귀자고 합의할 때까지는 달달하기가 캐러멜 마키아또 저리 가라였지만 일단 사귀고 나서는 쓰디쓴 블랙커피 같았다.
약속시간을 어기거나 연락이 끊기는 경우가 흔했다. 딱히 바람을 피운다기보다는 밤이고 낮이고 술을 마시고 잠자느라고 약속 시간을 어기는 일이 잦았다. 그러고도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사전에 ‘사과’라는 단어는 ‘apple’밖에 없었다. 그 시절 한 성깔 했던 나는 조용히 넘어갈 수가 없어 조목조목 따졌다. 그러나 따지면 따질수록 점점 거칠어지는 그의 반응에 그냥 넘어갈 걸. 참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것이 ‘가스 라이팅’이라는 것을 이십 년이 훌쩍 지나 알게 되었다.
잘못을 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남자. 비밀이 많은 남자. 쓸데없이 잔잔한 거짓말을 하는 남자. 회피하는 남자. 잠수 타는 남자. 가 나쁜 남자의 특징이다. 특히 잠수 타는 남자는 구제 불능이다. 앞의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쁜 남자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는 드라마가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를 통해 눈빛으로 말하고 박력 있는 남자들에 대한 로망을 가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벽에 콱 밀어붙여 키스하는 남자에 대한 동경심을 키웠기에 ‘일상적인 남자’들에게 강력한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을 겪어보니 말없고 박력 있던 남자는 그냥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고 공감력이 무척이나 떨어지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 솔직히 좀 만만해 보였던,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던 남자들이야말로 상대의 외로움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적어도 그 ‘다정한 시끄러움’이 상대로 하여금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한 마음이 들게 했다.
나쁜 남자는 그저 나쁜 사람이다. ‘나쁜 남자’라는 단어는 마치 ‘나쁜 사람’과는 다른 것 같은 성격이나 스타일의 일종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상대에 대한 존중 없는 남자는 단순히 나쁜 남자가 아니라 나쁜 사람이다.
나쁜 남자 스타일에 끌린다고 생각했다면 그대, 당장, 정신 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