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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Oct 02. 2022

제가 먼저 추겠습니다.

여인의 향기에 몸을 싣고 


뭐라꼬? 춤을 배운다꼬?

호호호 니 인자 춤바람 단디 나겠다. 요새 테레비에 ‘차차차’보믄 장난 아니든데. 


댄스를 배우러 간다고 했더니 옆집 언니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구나 하며 걱정인지 놀림인지 호호거렸다. 

늘 춤이 추고 싶었다. 내가 추고 싶었던 춤은 커플 댄스보다는 혼자 출 수 있는 춤이었다. 커플 댄스를 어디서 추겠냐고. 누구랑. 이십여 년 전 여행지에서 만난 프랑스 댄서들이 가르쳐 준 춤은 혼자도 커플로도 출 수 있는 춤이었다. 발리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아메리칸 스핀 등의 스텝을 밟으며 잠시나마 해방감을 맛보았다. 한국에 돌아와 한참 동안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기도 했었다. 실제로 한 군데 갔었었다. 맞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댄스 슈즈도 샀었는데 레슨 하신 선생님 춤이 뭐랄까 심해 해파리 같다고나 할까.. 도대체가 배우고 싶지 않아 몇 번 다니다가 포기해버렸다. 새로 산 슈즈까지 그곳에 내버려 둔 채로. 그렇게 나의 댄스 인생은 끝이 나는구나 싶었다. 


다음의 댄스 여정은 홍대 댄스홀이었다. 30대 후반부터 50대 정도까지 맥주 한 병을 들고 신나게 춤을 추는 댄스홀에서 나는 거의 날아갈 듯 춤을 추곤 했었다. 물론 막 춤. <자자>나 <브루노 마스>등의 음악에 맞춰 브루스 노래가 나올 때까지 정신없이 춤을 추곤 했었는데 거짓말 안 보내고 세 시간씩 내리 춘 적도 있었다. 아마 다들 죽순이라고 생각했겠지. 실제로 상황만 가능했다면 죽순이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코로나 시대가 닥치고, 나는 그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었다. 움직일 체력이 회복되자마자 춤이 더욱 간절했다. 그 소망은 엉뚱하게도 어려운 자리에서 어려운 분을 만나 이루어졌다. 내게는 꽤나 어려운 분이셨는데,

"제가 춤을 추거든요. 우리 같이 다녀요." 하는 바람에 얼른 따라나섰다. 이럴 땐 재빠르다.


춤을 시작한 곳에서는 8주에 한 곡을 완성하는데 이번엔 ‘탱고’에 당첨되었다. 탱고라니. 어머! 오똫게 모르는 사람이랑 손 잡고 춤을 추지 오똫게. 0.1초 걱정했었지만 이번엔 기필코 배우리라 결심했고 현재 스코어 개근 중이다. 첫 시간은 자연히 발에 눈이 갔다. 밟지 말아야지. 민폐 끼치지 말아야지. 오직 그 생각일 때 파트너 되신 분 한 마디! 

"눈! 눈! 눈을 들라고! "

"어… 예에.."


세 번째 레슨을 마치며 이거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춤에 그 사람이 다 들어 있었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춤이 있다. 같은 스텝인데도 밀고 당기는 정도, 호흡이 다 달랐다. 스텝만 신경 쓰고 틀리지 않으려는 춤은 재미가 없다. 갈바닉 마사지기만큼 미세한 신호를 제대로 캐치하고 따라가고, 커플 댄스는 또 다른 의사소통이었다. 

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옆사람 보지 마세요."

옆사람은 옆사람의 속도와 감각이 있는 것이고 내 것과 같을 수가 없다. 한 스텝이라도 내 스텝이 있더라. 

커플 댄스의 진짜 묘미는 춤의 순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마다 달라지는 춤의 느낌을 캐치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잘 추면 잘 추는 대로, 못 추면 순진한 느낌대로 리드를 그대로 팔로우하면 그게 멋진 춤이 된다.  

다들 한 땐쓰 하시라. 


외롭고 괴로울 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대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나면 아까의 시름은 참으로 초라해 보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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