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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Jul 06. 2022

헤어질 결심을 보셨나요

-나는 근사한 하루를 살아간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메신저가 울렸다. 영화 <헤어질 결심>  시사회 초대였다. 메신저 보내신 분은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을 하신 분이었다. 마음이 몹시 흔들렸으나 나를 기다릴 분들을 생각하니 연기하기가 쉽지 않아 기회를 놓쳤다. 


놓친 기회였기 때문일까. 주변이 온통 <헤어질 결심>으로 들썩거리는 듯했고 나는 어제, 마침내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박찬욱 감독의 연출력에 놀라웠다. 모든 것의 비밀은 디테일에 있다. 망하거나 흥하는 것의 열쇠는 얼마나 자세히 보았는지, 조심히 다루었는지에 있다. 그것은 관심이다. 


남자는 여자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살인을 의심하며 여인을 관찰하던 남자는 문득 그녀에게 매료되고 만다.  자신의 경찰 인생에 미결은 없어야 한다고 믿는 그가,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도 사건에 집착하던 그가, 그만 아름다운 손서래에게 매혹당하고 그녀가 저지른 살인의 증거품인 핸드폰을 버리라고 한다. 


바다 깊이.

아무도 모르게. 


손 서래(탕웨이)에게 이 말은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버릴 가치가 있는 '사랑 고백'이었다. 

그녀. 남자들의 심장을 원하는 고혹적인 탕웨이가 아니라, 엄마의 죽음을 도운 죄로 살인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채 살아가야 했던, 결국 폭력을 쓰거나 야비한 남자들의 굴레를 맴돌아야 했던 손서래에게 해준(박해일)의 '아무도 모르게'라는 한마디는 세상으로부터의 무조건적인 보호막이자 결연한 사랑의 울타리가 된다. 그녀는 이제 외롭지 않다. '아무도 모르게'라고 말해준 해준이 있었기에, 그녀는 그 한마디에 모든 삶을 의지하게 된다. 나는 그런 여성들의 습성을 이해한다. 


서래의 사랑은 해준 주변에서 해준을 지켜 주는 것이었다. 잠 못 드는 그를 위해 숨을 맞춰 그를 재워주고 그를 웃게 하고 설레게 했다. 그녀가 그에게서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혼을 깨라고도, 무엇을 사달라고도, 함께 있어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편안하기를 바랐을 뿐이다. 왜냐하면, 해준은 그녀가 찾은 유일한 '품위 있는 남자' 였으므로. 그녀가 모든 것을 걸고 지켜야 하는 단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해준이 서래를 의심하며 철저히 '사건'의 피고인으로 서래를 좁혀올 때 그녀가 한 행동은, 서래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터지고 찢기고 잔인한 살인의 장면을 두려워하지 않는 해준이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것은 '피 냄새'이다. 그녀는 현장을 찾을 해준을 위해 수영장에 있던 핏물을 빼고 시체를 꺼내고, 해준에게 치명적이 될 핸드폰을 바다에 버린다. 그리고 그에게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되기를, 그리하여 그의 벽 한 자리를 차지하기를 소원하며 깊고 깊은 바다에 자신을 묻는다. 


나는, 밀물이 들어오는 바다에서 초록색 양동이를 들고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 있던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그녀의 손을 낚아채고, 미쳤냐고, 어쩌면 그는 품위 있는 단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끌고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모호한 안개처럼 그녀는 사라지고 부서지고 울부짖는 파도 앞에 해준은 무기력하게 그녀를 찾을 뿐이었다. 


사랑을 의심한 해준에게 영원한 미결로 남게 될 서래. 그것은 형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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