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엄마, 나의 엄마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비로소 알아가는 나의 엄마

by Leena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공항에서 배웅 후 돌아오는 길 내내 훌쩍였다. 집에 오니 곳곳에 가득한 엄마 흔적 때문에 또 눈물이 났다. 다독여주는 신랑이 있으니 괜스레 더 서글펐다. 젖먹이 엘림이에게 수유하며 눈물 뚝뚝 흘리는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엘림이. 이 작은 것이 위로가 된다. 사랑하는 나의 엘림이. 벌써 그리운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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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출산예정일에 맞춰 한국에서 친정 엄마가 먼 땅 뉴질랜드까지 와주셨었다. 떨어져 사는 둘째 딸이 늘 안쓰러우신 엄마는 산후조리를 도와주시겠다며 무려 두 달 반의 시간을 비워서 와주셨다. 육아라고는 해본 적 없는 초보 엄마와 초보 아빠, 우리 부부는 벌써 손주 여럿을 키워보신 엄마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이렇게 사랑의 빚을 진다.


처음 엄마께 산후조리를 부탁하고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엄마가 오시는 게 너무 기대되고 행복한 반면, 한편으로 뭔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나는 늘 홀로 스스로 하려고 했다. 엄마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내가 알아서. 엄만 그런 내가 기특하셨던 걸까 아님 서운하셨던 걸까. 늘 주변분들에게 나를 소개하실 때면 " 저 아이는 뭐든 혼자 스스로 잘해요"라고 하셨다. 초등학생까지의 기억은 사실 흐릿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엔 공부하느라 바빠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잘 없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주변인들과 함께 시간 보내느라 바빴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일한다고 바빴다. 그동안 대체 엄마와 쌓은 추억은 뭐가 있었을까. 그런데 산후조리 기간 동안에는 온전히(?) 엄마한테 의지해야 한다. 출산 후 내 몸은 몸이 아닐 테고, 신생아를 돌본 경험조차 전무후무한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하루 24시간을 엄마와 붙어서 밖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지내야 할 텐데 이거... 괜찮겠지?


우려하던 일은 꼭 발생한다. 엘림이를 출산하고서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집이 한바탕 뒤집어져있었다. 정리정돈에 철저하신 우리 엄마..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나흘 동안 집안 곳곳을 신생아 맞이 청소하시고 엄마 보시기에 아니다 싶은 것들을 과감하게 다 옮겨두셨다. 그렇다고 내가 정리를 안 해놓고 사는 사람이었던가...? 전혀 아니다. 남편과 나만의 규칙에 따라 하나하나 정리되어있던 물건들이 엄마의 규칙에 맞춰 정렬되어 있었다. 덕분에 남편과 나는 허둥지둥거렸다. 내 집이 내 집이 아닌 기분. 이 일로 엄마와 부딪히고 싶지 않았기에 하루 이틀 동안은 " 엄마 이거 어디 있어?" 물어가며 살았다. 삼일차,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 출산 후 호르몬으로 예민해져 있던 나는 하루 종일 물건들과 숨바꼭질하는 일에 질렸다. 만만한 게 역시 엄마다. 잔뜩 화를 낸 후 신랑을 시켜 전부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겼다. 엄마는 예민한 딸의 눈치만 보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무 죄송했다. 엄만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으셔서 정리해주신 걸 텐데.. 신랑이 출근한 후 아이가 자는 동안 엄마와 차 한잔 마시며 진솔하게 내 감정을 설명해드렸다. 오랜만에 엄마랑 나란히 앉아 오랜 시간을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을 거슬러가며 나의 십 대와 이십 대 때 일들까지 나왔다. 서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들, 서로 모르고 지나간 것들, 서로 잊고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꺼내보며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엄마와 오랜 시간 이야기하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내가 몰랐던 엄마, 엄마가 몰랐던 나. 우리는 서로 퍼즐을 맞추듯이 과거에 일어난 한 가지 사건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들었다. 나도 이제 한 아이에게 엄마가 되어서일까. 이제야 엄마의 이야기가 들린다.


이 날을 계기로 엄마와 있는 시간이 더없이 좋아졌다. 그간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던 엄마의 시간들에 대해 묻고, 엄마로서의 삶에 대해 듣는 일은 생각보다 더 재밌었다. 내 평생에 언제 또 엄마와 삼시세끼 함께 먹고 함께 자며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엘림이에게 새삼 고마웠다.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함께 여행을 떠났다. 엘림이가 생기기 전 신랑과 함께 여러 번 여행했던 가까운 섬 (Waiheke Island)으로 1박 2일 다녀왔다. 아직 백일도 되지 않은 어린 아기와의 여행이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생각보다 엘림이는 여행기간 내내 참 잘 지내줬고 다시 생각해도 엄마와 함께 여행한 일은 백번 잘한 일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절경인 아름다운 섬에서 엄마와 함께 원 없이 사진을 찍었다. 엘림이를 품에 안고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내가, 사랑하는 나의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들은 다시 봐도 마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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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heke Island에서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시던 날, 엄마는 공항에서 뒤도 안 돌아보시고 가셨다. 나도 씩씩한 척 엄마를 배웅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엉엉 울었다. 그 복잡한 감정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가 눈물이 앞을 가려 못 쳐다보고 왔다"라는 엄마의 메시지를 보며 며칠을 울었다. 엄마가 된 딸을 두고 먼 길을 떠나야 했던 나의 엄마. 그 마음은 또 내가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나의엄마

#오래오래행복합시다

#늘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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