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2020년 결산하기

그리고 내년에 꼭 이루고 싶은 것들... ♡

by 봄의파랑

올해를 돌아보려고 한 해 동안 써왔던 작은 기록과 사진을 하나하나 훑어봤다. 아무것도 안 한 무기력한 한 해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는 즐거웠고 역동적이었으며 감정적으로도 풍부했던 한 해였더라. 별의 별일을 다 겪고 난 후 남은 담담한 마음으로 올해의 마지막 글을 쓴다. (집에 있는 시간들은 어쩜 이렇게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쓰게 만드는지!)


올해의 성취

뻔하지만 프랑스에서 석사를 시작한 것. 사실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인생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깊은데 판데믹에 휩쓸리기 바빠 상대적으로 석사를 시작한 것을 별 일 아닌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최근에 지난 프랑스에서의 기록들을 다 읽어봤더니 얼마나 간절히 이 기회를 원했는지가 새삼 떠올랐고 나의 성취에 대해 연말에 작은 샴페인 한 병 정도는 터트려 주기로 했다.

올해의 발견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올 한 해는 방 안에 갇혀 지낸 시간이 워낙 길어서 그런지 음악을 듣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었다. 제일 많이 들은 장르는 재즈. 방구석을 재즈바로 바꿀 수 있는 상상력만으로도 쉽게 황홀해할 수 있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심지어는 생전 안 듣던 클래식도 듣기 시작했다. 올 한 해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것들 중 음악이 가장 큰 공로를 세웠다.

올해의 도전

대학원 수업을 (굳이) 프랑스어로 들은 것. 이건 나에게 앞으로 있을 도장 깨기의 첫 시도쯤 되는 의미가 있는 행위였는데 다행히도 앞으로 무수히 많은 도장을 즐겁게 깰 수 있겠다는 용기를 줬다. 다음 학기에도 도전은 계속될 예정이다.

올해의 슬픔

어쩌면 다시 사랑이 시작할 줄 알았던 것. 인생은 얻은 것만큼 잃어야 할 것도 있다는 걸 깨달았던 모든 순간들.

올해의 기쁨

한국에 돌아갔을 때 가족 여행으로 강원도에 갔다. 등산도 하고 계곡도 가고 해수욕도 했는데, 동생들이랑 이상하고 웃긴 춤을 만들어서 어딜 가든지 그걸 추며 다녔을 때. 매 순간 아빠가 동영상을 찍어줬는데 진짜 엄청 유쾌했던 추억. NG라고 몇 번씩 다시 찍을 때는 진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소리 내서 웃을 일이 잘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깔깔대며 웃게 만드는 내 해맑음의 원천, 정자매 사랑해!

올해의 잘한 일

가족사진을 찍으러 간 것.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셀프 스튜디오에 가서 생애 첫 가족사진을 찍었다. 가끔씩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볼 수 있던 스튜디오 사진들이 내심 부러웠는데 내가 해외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이번 기회에 엄마 아빠를 데리고 가서 같이 의미 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셀프 스튜디오라 20분 동안 즐겁게 웃고 떠들며 사진을 남겼던 모든 과정이 추억이 됐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쓴 것. 일 년 동안 총 서른 하나의 글을 썼다. 원래 목표했던 일주일에 한 편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아마 방 안에 오랜 시간을 갇혀 있었던 것이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펜을 쥔 기억이 어느 때보다 많았다.

올해의 힘들었던 일

일단,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이어졌던 봉쇄령. 반경 1km 밖으로는 나갈 수 없던 그 시절의 막막함은 정말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온갖 불행을 끌어안고 살았다. 그리고 한국에 갈지 말지 고민하다 보냈던 여름의 날들. 그때가 아마 외국 생활하며 가장 큰 향수병을 느꼈던 때인 것 같다. 이제야 말하지만 밥도 잘 못 먹고 정말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엔 한국행을 택했고 그것이 올해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냥 한국 집에 가족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천하무적인 기분이 될 수 있는지,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던 한 해다.

올해의 기억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 얻어 마신 레몬 맥주와 그날 밤의 다정한 마음들. 세 달 동안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기념품 샵 맞은편 책방의 직원들과 주인아저씨와 오며 가며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장난을 치는 등 친근하게 지내긴 했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가게의 셔터를 내리고 퇴근하는 그 저녁에 술을 사주실 줄은 몰랐다.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은 내게 소설 속 한 페이지처럼 아련하게 남아 있다. 언젠가 그곳을 다시 지나치며 반가운 인사를 건넬 날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들.

올해의 취향

우드 톤의 따뜻한 인테리어. 인테리어 계정을 열심히 보는 취미가 생겼다. 언젠가는 내 취향으로 꾸며놓은 집을 갖길 꿈꾸며. 올해를 거쳐간 모든 이들이 아마 그렇겠지만 일상적인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기면서 언제 다시 어떤 위기 상황이 와도 나를 든든하게 지켜줄 곳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 이왕이면 발 붙이고 살아야 할 일상을 더 아껴주고 싶다. 특히 예전에는 내 취향이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매개가 옷이었다면 슬슬 인테리어로 옮겨가고 있는 듯.

올해의 여행

올해를 추억하려고 사진첩을 뒤적이다 보니 그 와중에 여행을 다니기도 했더라. 특히 여름에 떠난 남부 여행은 아마 '찬란함'이라는 단어로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남을 거다. 빛과 색으로 가득한 세상, 알록달록한 모든 색채가 날 순식간에 매료시켰다. 무한으로 펼쳐진 보랏빛 라벤더 밭,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져 자유롭게 수영을 하던 순간에 몸에 닿던 물의 감촉이나 항구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넋을 놓은 채 바라본 노을은 절대 못 잊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올해의 문장

말하자면, 이 질병의 무지막지한 침범은, 그 첫 결과로써 우리 시민들을 마치 사적인 감정 같은 것은 느끼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 알베르 까뮈, <페스트>

올해 페스트를 읽는 것은 사람들이 전염병의 시대를 버텨내는 한 가지 방식이 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가 길어지면서 첫 번째 봉쇄에 읽었던 페스트를 두 번째 봉쇄 때 다시 슬쩍 들춰봤는데 또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마치 지금 쓰인 책인 것처럼 현 사태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지쳐가는 마음만큼이나 공감 가는 구절이 많았기에 몇 번이고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역사는 돌고 도는지, 그럼 이 사태도 끝이 있을지.

올해의 콘텐츠

어느덧 꼭 챙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1박 2일 시즌 4>. 아이돌 덕질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며 잃어버렸던 즐거움이 일박이일의 여섯 멤버를 보는 것으로 대체됐다. 웃긴데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해서 좋다. 최애 멤버는 문세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냥 좋은 사람. 생각해보니 매주 챙겨보는 예능 프로는 딱 두 갠데 그 둘의 고정멤버기도 하네.

올해의 만남

줌으로 했던 모든 온라인 만남들. 세상은 시대의 필요에 맞게 변화한다. 비록 몸은 9천 키로 떨어져 있어도, 낮과 밤 정도의 시차가 있다 해도 스크린 속 친구들의 얼굴이 여전해서, 우리의 대화가 그대로여서 안도했다. 그렇게 붙들었던 삶의 이유들.

올해의 다짐

아낌없이 사랑하며 살기. 지루한 판데믹 시절을 거치면서 나의 꿈은 노부부로 평화롭게 늙어가는 것이 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결국에는 정말 중요한 것만이 곁에 남지 않을까? 살면서 처음으로 개인적인 성취보다 생의 근본적인 가치들에 마음이 이끌리게 됐다.

올해의 순간

아비뇽 대성당에서 노을 지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원래도 노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정도로 어떤 풍경에 압도되는 기분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너무 예뻐서 눈물이 다 날 만큼.

그리고 <individus et organisation> 수업 발표가 끝난 후 박수갈채를 받았던 순간. 그간의 마음고생이 성취감으로 단숨에 치환되었던 그 순간은 아마 앞으로 내가 계속 용기를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올해의 의미

다른 건 다 엉망이었다 쳐도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 아무튼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할 수 있었다는 것.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종류의 시련이 결국에는 더욱 단단한 나를 만들어냈다. 하도 여기저기 두들겨 맞아서 맷집이 강해진 것과 같은 이치로.


그리고 2021년에 이루고 싶은, 이루어야 할 일들.

! 인턴 구하기 : 드디어 인생의 큰 목표인 프랑스에서 일해보기를 실천해야 하는 때. 2월부터는 구직으로 정신없을 예정이다.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 달프 C1 따기 : 이건 사실 올해 목표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시험이 계속 엎어지기도 했고 이후에도 시험을 보러 가기가 애매해서 이루지 못했다. 올해는 잘 준비해서 이왕이면 한방에 따야지.

! 깊이 몰입할 수 있는 관심 분야 찾기 : 인생은 장기전이다. 뭔가 꾸준히 관심을 쏟고 그게 개인적인 성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공부할 것. 요즘에 관심 두고 있는 몇 가지 분야가 있는데 내년에는 그걸 좀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보고 싶다.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는 요즘.


그래도 이렇게 다 적어내고 나니 2020년을 쿨하게 보내줄 준비가, 2021년을 뜨겁게 맞이할 준비가 됐다.

BONNE ANNÉE A TO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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