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무조건 플러스다.
폭풍 같은 첫 학기가 끝났다. 기말 시험 기간 동안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당겨 쓴 까닭에 그간 차곡차곡 누적된 피로를 회복하는데만 3일이 지나갔다. 밤새 커튼을 내려 두고 알람도 따로 맞추지 않은 채로 실컷 자고 일어나 커피를 내려마시고 책을 몇 장 넘겨 보다가 좋아하는 TV 예능들을 보다가 밀려둔 글을 좀 쓰다가 신선한 재료들로 요리를 해 먹으면서 지낸다. 시험이나 과제 같은 어떠한 정신적 압박이나 마감의 쫓김 없이 마음 편히 쉬어본지가 오래되긴 했는지 실컷 여유를 부리며 하루를 쓰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역시 온과 오프가 명확한 인생은 좋은 것.
나에게도 우당탕탕 그 자체였던 첫 학기였으니까 지난 네 달 동안 보고 느낀 점에 대해 간단히 써보려고 한다. 일단 역시 영어 수업이 가능한 사립학교라고 해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다. 이것 하나 때문에라도 입학 전 1년 반 동안 어학연수를 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일단 지난 어학연수 덕에 단순히 프랑스어를 말할 줄 아는 것 자체를 넘어 프랑스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할 수 있었고 학교에 와서도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를 쓰게 됐다. 사실 학교 밖에 나가면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외국 학생들이 정말 많은데, 이 학교에 오면 내가 프랑스어를 어렵지 않게 한다는 것이 굉장히 특별한 능력이 된다. 특히, 학교의 외국인 친구들 대부분은 영어를 훨씬 편해하고 웬만하면 영어만 쓰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할 줄 알면 아주 손쉽게 프랑스 친구들이나 때론 교수님들까지도 놀라게 할 수 있다. 다만 그동안 내 영어가 많이 퇴보해서 오히려 영어를 버벅거리게 됐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사람이 뭐 모든 것에 완벽할 순 없지.
그리고 동아리 활동의 경우에도 애들이 공지사항이나 행사 진행 같은 공식적인 것들을 영어로 다 설명을 해주긴 하지만 그냥 다양한 주제로 떠들 때는 결국 대다수가 편한 프랑스어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그 잡담에 낄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은 다르니까. 아무튼 프랑스어를 할 줄 알면 과목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친구를 사귈 기회도 많아지고 또 그게 여러 긍정적인 나비효과를 불러온다. 이는 앞으로의 구직활동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낳을 거다. 실제로 프랑스 회사에 취업을 하려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게 거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물론 영어 능력으로 커버칠 수 있는 글로벌 회사들도 많지만 선택지의 수 자체만 놓고 보자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는 게 취업의 문을 훨씬 넓히는 것은 사실이다. 반면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꼭 프랑스에 취업을 할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럭셔리 업계에 관심 있어서 온 친구들이 꼭 프랑스에서 일까지 구하려는 것은 아니고 홍콩이나 두바이 등 글로벌 도시에 취직을 노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프랑스에 살려는 게 아니면 굳이 프랑스로 유학을 올 것까지 있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동기가 다양했다. 뭐 EU에 속하는 나라의 친구들이야 언어 장벽도 낮을뿐더러 유럽 내에서 랭킹 높은 경영 학교를 가는 게 유리하기도 하고 도전할 수 있는 취업 시장 자체도 넓어지는 거니까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1년, 독일에서 1년 공부한 후 양쪽 학교에서 이중 학위를 딸 수 있는 코스를 하러 온 독일 친구들도 많이 봤고 이번에 수업 조모임을 같이 했던 이탈리아 친구는 올해 겨울부터 룩셈부르크에서 일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별 거 아니지만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프랑스 학생들 사이에서는 페이스북 메신저가 가장 주된 연락 수단이라는 것. 외국인 학생들은 조모임이든 사적인 모임이든 보통 번호를 물어보고 왓츠앱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 애들은 그냥 번호를 모르는 사이면 페이스북에서 이름을 검색해서 친구 추가를 한 다음에 페이스북 메신저로 말을 건다. 이 차이가 정말 명확하게 드러났던 게 내가 듣는 7개의 영어로 된 수업에서는 다들 상대의 번호를 등록한 후 왓츠앱을 이용한 반면, 프랑스어 수업에서는 조모임을 진행할 때 서로 번호를 모르는 사이어도 (지금도 모르고) 어느 순간 페이스북으로 메시지가 와 있었고 그 채팅창을 통해 서로 같이 하는 사람이 누군지 파악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진행된다. 물론 동아리 단체 방도 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진행된다. 페이스북 메신저가 제일 좋은 점은 상대가 보낸 메시지에 이모티콘으로 반응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한마디 안 더해도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게 편하고, 가끔은 엄청 효율적일 때도 있다. 예를 들면, 누군가 ‘혹시 내일 3시에 버블티 먹으러 갈 사람 하트 찍어줘’라고 하면 그 메시지 밑에 하트 7개 이런 식으로 떠서 하트를 보낸 사람을 확인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체 톡방이 활발한 건 전 세계 젊은이들 공통이다.
얼마 전에는 프랑스에서 4년짜리 체류 비자를 받았다. 1년짜리를 받고 처음 이 땅에 왔고, 대학원 입학 전 체류를 연장하기 위해 어학연수로 10개월짜리를 추가한 나에게 이 정도의 장기 비자라니 가슴이 뭉클했다. 비자는 이방인의 뿌리 그 자체다. 그 뿌리가 있어야 비로소 낯선 땅에 발붙이고 살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까. 앞으로 4년 동안(내 비자가 종료되는 시점은 2024년 파리 올림픽이 끝날 즈음이다!) 비자를 갱신하러 경시청을 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초조한 마음으로 온갖 서류를 준비하고 혹시나 서류를 빼먹지 않았을지 열 번씩 확인하는 그 모든 번거로운 과정들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나를 안심시키는지 모른다. 물론 그 안에 취직해서 워킹비자로 바꿀 거고, 그렇게 한 발 한 발 낯선 곳에서 안정적인 삶을 이룰 수 있게 될 거다. 그래도 내 삶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뜬구름 잡는 것 같기만 했던 내 꿈이 어떤 형체를 갖춰가고 있다는 사실이 따뜻한 위로가 되는 연말.
(붙이는 말. 혹시 프랑스 경영 석사 유학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셔도 좋아요. 분명 준비를 할 때는 별 게 다 궁금했던 것 같은데 막상 이야기를 쓰려니 대체 나는 뭣이 그렇게 궁금했었나 가물가물하거든요. 아무래도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