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미시경제학이 좋아지기도 하고 말이야
오늘 아침에는 미시경제학 중간고사를 쳤다. 여태껏 배웠던 것과는 다르게 수학 공식과 그래프를 적용해서 솔루션을 찾는 방식이 처음에는 너무 생소했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이론에 비해 문제풀이가 너무나 어렵게 느껴졌고, 이론을 아무리 이해했다고 해도 실전 문제를 마주했을 때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공식을 적용해 해답을 찾아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게다가 이 수업은 매주 문제를 풀어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매주 주말이 고통이었다. 문제 하나에 세 시간씩 붙잡고 있으면서 머리를 굴려봐도 영 그럴듯한 답이 나오지 않기에 역시 공부할 머리가 아닌가 보다 하며 자괴감에 빠져있기도 했다. 방구석에 갇혀 있으면 문제 하나가 잘 안 풀리는 것도 세상 심각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학교 입학을 앞두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학부 때 좋아했던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 분야 말고도 관심이 가는 다른 분야들이 생기면 좋겠다고. 그동안의 사회 경험이 오히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의 영역을 바꿔놓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남겨뒀었다. 특히 지금처럼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지 않고, 사적인 생활과 조직에서의 일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싶은 의지가 클 때는 더더욱. 그래서 앞으로 나의 커리어가 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활짝 열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첫 학기고 다양한 분야의 기초 과목을 듣고 있을 뿐이라 이런 말을 하기엔 이르긴 하지만, 사실 회계, 재무, 수학, 경제 등 숫자를 다루는 모든 분야가 너무 끔찍해서 역시 인간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을 잡고 차근차근 복습을 하며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희한하게도 이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는 거다. 뭔가 물꼬를 하나 트니까 여기저기서 물길이 열려서 갑자기 모든 게 딱딱 맞춘 것처럼 이해가 되고 하나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희열을 느꼈다. 수학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답이 또렷한 학문을 공부한다는 건 확실히 짜릿함이 다르다. 사회생활하면서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노답' ‘진짜 답 없다' ‘어떡하지’인데 이렇게 딱딱 답이 도출되는 학문이 있다니. 여러 사람이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따위 필요 없고 내 손 안을 떠난 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의지와 끈기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역시 어떤 것에 끌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여전히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희망차게도.
삼십 대에는 누구나 그런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 같다. 이대로 인생이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새로운 것을 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살기는 싫은데 하는 모순된 기분. 아직까지 나도 가끔은 그대로 한국에서 하던 일하면서 경험치를 더 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 이전과 같은 학문도 나이를 먹은 만큼 또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일이 즐겁고 짜릿하다. 세월의 풍파로(!) 둔해진 머리를 쓸만하게 다듬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맘때가 되면 파리 시내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전등, 트리를 찾아볼 수 있다. 올해는 영 그 분위기를 느끼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하던 중에 오늘 장을 보러 갔고 이 동네의 유일한 쇼핑센터에 온갖 크리스마스 장식이 달려있는 것을 보고 잠시나마 행복함을 느꼈다. 이번 겨울에는 세르지에 눈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아니,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겨울 나라에서 한 일주일 쉬고 올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