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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May 24. 2022

24. E형 인간의 네트워킹 생존법

어쩌다 보니 근황 토크. 

비즈니스 스쿨의 제1의 존재 이유는 아무래도 네트워킹이다. 코로나 시국에 입학한 나는 1년 반에 가까운 시간을 별다른 대면 행사 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커리어 페어를 비롯해 각종 기업 리쿠르터를 만나는 행사도 전부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온라인 커리어 세션에서는 링크드인을 활용해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왔지만, 사실상 얼굴도 보지 않은 상태로 네트워킹을 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리고 연간 행사인 커리어 페어가 대면 행사로 진행된 올해 1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네트워킹을 위한 행사들이 시작되면서 나는 비로소 네트워킹의 존재 이유를 실감했다. 우선, 커리어 페어 이야기부터 해보자면, 학교 강당에 마련된 각 기업 부스에 HR 담당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관심 있는 럭셔리, 뷰티 쪽 기업들을 공략하기 위해 미리 여러 장의 이력서를 뽑아 갔다. 나의 경우엔 LVMH 부스에 가서 디올, 지방시, LVMH 프래그런스 등 각종 브랜드의 인사 담당자들을 하나하나 공략했다. 물론 특정 부스에 학생들이 몰리는 경우가 많아 순서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눈치 작전으로 담당자의 앞이 비어있을 때 자연스레 자리를 옮겨 인사를 건네며 대화를 주도했다. 그들은 대체로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는지, 어느 부서에 어느 포지션에 관심이 있는지, 그리고 지원자가 잘하는 것은 뭔지 등을 궁금해했고, 나는 새로운 인사 담당자를 만날 때마다 수없이 자기소개를 해야만 했다. 이것은 마치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HR 면접 같았고, 온라인으로 사이트를 통해 지원한 채 하염없이 HR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확실히 효율적이었다. 인사 담당자들은 내가 제출한 이력서 뒤에 내가 말한 내 소개와 지망 포지션을 꼼꼼히 메모해갔고 그들이 손에 쥔 이력서만 한 트럭이어서 과연 이게 되긴 하는 건가 긴가민가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뭔가를 하는 게 그래도 낫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커리어 페어에 갔다는 사실도 가물가물했던) 한 달 뒤쯤, 내가 이력서를 건넨 브랜드의 내가 지원한 포지션 담당 매니저들한테 인사팀으로부터 내 이력서를 건네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LVMH 그룹 소속 브랜드들의 매니저들과 면접을 본 건 처음이라 발로 뛴 보람을 느꼈다. 


학기가 진행되면서는 더욱 기회가 많아졌다. 저번 학기 체어(프랑스에서 살아남기 21편 참고) 활동의 마무리는 프랑스의 정부 기관 중 하나인 생태 전환부(Ministère de la transition écologique)의 강당에서 관계 부처 사람들과 기업 관계자들 앞에서 파이널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일이었다. 우리 조는 로레알의 스폰서를 받아 메이크업 카테고리(파운데이션, 마스카라 등)에서 최종 소비자에게 닿지 못한 채 버려지는 미판매 제품의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에 대해 발표를 했다. 3개월 간 로레알 관련 부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미팅하며 피드백을 받고 또 담당 코치와의 주간 미팅, 두 번의 초안을 거쳐 만들어낸 피피티로 말 그대로 3개월 간의 피땀 눈물이 묻어있는 결과물이었다. 정말 기쁘게도 총 여섯 개의 팀 중에 근소한 차이로 2등을 했고(실제로 1,2위가 치열했다고 심사위원들이 이야기해주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간의 고생이 모두 보답받는 느낌이었다. 그 심사위원들 앞에서 강당에 선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웠는데 좋은 평가까지 받다니! 이때만큼 스스로가 대견했던 적이 없었다. 수상 후 이어진 행사는 샴페인 파티. 교수님과 심사위원들, 인사팀을 포함한 각종 기업 관계자들이 다 같이 준비된 핑거 푸드와 샴페인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눴다. 로레알에서도 자기 회사가 스폰서를 해준 팀이 2등을 한 게 뿌듯했던지 다가와 계속 칭찬과 축하의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인사팀에서도 네가 찾고 있는 포지션이 뭔지, 앞으로의 커리어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관심 있게 물어봐주고, 내가 가진 궁금한 점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물어볼 수 있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대화 스킬. 어버버 하지 말고 적절한 질문으로 대화를 리드해가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이때만큼은 에디터로서 살아온 시절이 빛을 발했다. 


또 한 번은, 체어를 통해 샤넬 패션 파트에서 주최하는 공모전 같은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 샤넬 직원들, 협력업체 직원들 이렇게 한 팀을 이뤄 지속 가능한 발전과 관련된 다섯 가지 주제 중 하나를 고른 뒤 1박 2일 동안 프로젝트를 만들고 최종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깜봉 가에 위치한 샤넬 본사에서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된 (아침, 점심, 저녁식사까지 다 제공하는) 빡센 프로그램이었다. 오죽하면 프로그램명도 마라톤. 이상하게 연이 닿지 않았던 샤넬이랑 작은 연결고리라도 만들고 싶어서 지원한 것이었다. 여기서도 역시 이틀간의 프로젝트 시상이 끝나고 저녁에 작은 샴페인 파티가 있었다. 살짝 옆길로 샌 얘기를 하자면, 샴페인 파티는 샤넬 본사의 7층 테라스에서 진행됐는데 (직원들도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자주 개방하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DJ가 와있는 것은 물론이고 파리 전경이 다 보이는 뷰 때문에 처음으로 '에밀리 인 파리' 속 한 장면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튼, 그곳에서도 인사팀이 자신들을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했고 이미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쭈뼛거리는 동안 그곳에서 사귄 프랑스인 친구가 너 학교 좋은 데 다니니까 자신감 있게 얘기하라고 등을 떠미는 바람에 은근슬쩍 다가가 '나는 어디 학교에 다니는 누구고 내가 인턴을 여러 번 지원했는데 한 번도 연락이 안 왔다'며 말을 텄다. 그러니까 그분이 직접 나한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라며 캠퍼스 리쿠르팅 담당자를 찾아 인사를 시켜주었고 담당자와 대화를 통해 내가 원하는 걸 말하고 자연스레 그분의 이메일과 링크드인을 받게 되었다. 그 파티에서 나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녹음된 말을 하는 인형처럼 반복적으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 스킬도 점점 늘어 나중에는 거의 자동응답기 수준으로 말이 나왔다. 그곳에 있는 내내 얼마나 많은 자리들이 이런 식으로 채워질까 생각했고 이것이 네트워킹이 필요한 이유였나 보다 깨달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말 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의 성향이 그래도 이럴 때 쓸모가 있구나 싶었다. 이후 한 달 뒤쯤 인사팀에서 실제로 연락이 왔다. 


물론 이 모든 고군분투에도 불구, 내가 원하는 회사에서 원하는 포지션을 따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최종 면접에서 숱한 고배를 마시다 보니, 해변가에서 모래를 한 움큼 잡았는데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뭔가 내 손안에 다 들어온 것을 무기력하게 놓쳤다는 자괴감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어느 날 링크드인에서 본 글귀가 내 머리를 강하게 때렸고 그 후로는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린다. « 당신이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곳으로 향하기 위한 방향을 재탐색하는 일이다. » 그리고 지금은 존버가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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