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정도 변수는 괜찮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너라는 변수를 만난 나는 너무나도 내일이 불완전하고 어색하고 불안해. 반이었던 김무열의 내일을 그렇게 만드는 너는 정말로 이젠 날 하나로 만들 건가 봐.
몇 년 전이었나. 배우 김무열의 이 취중 트위터 한 줄이 내 심장을 얼얼히 치고 간 게. 사랑에 빠진 마음이 이렇게 시적일 수 있다는 걸, 사랑은 누구나 시를 쓰게 한다는 걸 이때 알았다.
변수. 삶에 예기치 않은 변수가 등장하는 것에 대한 공포는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을 하며 생겨났다. 그 일을 하기 전의 나는 그래도 꽤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고 늘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무모한 믿음이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임기응변에 뛰어난 편이었다. 특히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이런 것들은 꽤 플러스 요소가 되었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내가 온전히 지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 촬영의 어시스턴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에디터가 된 후로는 촬영을 기획하고 스태프들을 모으고 촬영을 이끌어 가야 하는 사람이 나니까. 배당받은 지면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으니까. 촬영에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변수들이- 촬영이 펑크가 난다거나 섭외한 장소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준비한 소품이 사라졌다거나 등등- 매번 일어나지 않아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항상 긴장한 상태였다. 뭐 하나라도 삐끗해 촬영을 망칠까 봐 겁이 났다. 촬영을 앞두고 몇 번이나 시안을 다시 봤고, 제대로 장소 공지를 했는지 일일이 단톡방을 체크하고, 촬영 전에 스튜디오에 가서 모든 소품이 제대로 준비가 됐는지 몇 번이고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많은 스태프들과 함께 일하는 현장의 총책임자가 나라는 사실이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된다는 강박을 갖게 했다. 뭐 하나가 잘못되면 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하니까. 이상한 완벽주의자 성향을 갖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을까.
해외에 정착을 하면서 이런 성향은 더 심해졌다. 혼자 오롯이 삶을 꾸려나가야 했기 때문에 뭐 하나라도 잘못되면 삶 전체가 우르르 무너져 버릴까 봐 겁이 났다.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는 낯선 곳에서 나를 지켜야 했으니까. 집 열쇠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강박에 하루에도 몇 번씩 열쇠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 나비고(교통카드) 충전을 하고 꼭 영수증을 챙기는 것, 공용 자전거를 세우고 잘 주차가 되었는지(혹시나 분실로 벌금 낼까 봐) 끝까지 확인하는 것 등 강박에서 나온 행동들이 일상적인 습관이 되어갔다. 그래서 한 번씩 휴가로 한국에 들어가면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평소 이런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나 스스로를 좀먹고 있다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끊임없이 덤벙대던 예전의 나답지 않게 낯선 곳에서 말도 안 되게 애쓰고 있었다는 것도.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 되다니.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할 거 있었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 나라에서 정착하고 오래 살아남고 싶었으니까, 쓸데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할 여지를 차단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일이 잘 안 풀리면 그냥 돌아가면 되는데, 돌아갈 집은 언제나 있는데...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나한테 연애는 이런 변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시작하기 전에 덜컥 겁부터 났다. 누군가와 함께 할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너무 좋아졌는데 그 관계가 잘 안 풀리면 그 후의 감정을 어떻게 혼자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부터 들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나의 바운더리 안에 품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한 번 그 바운더리 안에 누군가 들어온다면 그 사람과 멀어지는 걸 힘들어하는 편이라 극단적으로 방어적이게 됐다. 물론 그 벽을 한 번에 무너뜨릴 만큼 강렬한 감정을 가질 만한 사람을 아직 못 만나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어디 쉽냐고. 일단 자신이 엄청난 사랑을 쏟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스스로가 사랑에 빠지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당연히 상대에 대한 경계의 정도도 올라간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마음에 별로 차지 않는 사람이랑 두세 번 만나볼 마음의 에너지도, 사실은 그럴 체력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없으면 없는 대로 혼자 행복하게 잘 살면 되지!'가 왜 안 되고 있냐 하면, 요즘은 너무 사랑이 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자꾸 인생에 어떤 큰 부분을 놓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 없이는 완전한 삶이 되지 않을 것만 같고 그래서 이렇게 평생 미완성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두려워졌다. 한 번 사는 인생 꽉 채워서 알차게 살고 싶은데 아무래도 혼자서 할 만한 건 다한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요즘처럼 별 다른 변수 없이 안정적인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권태로운지 알아서 이제는 사랑의 감정이 내 무탈한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고 해도 그렇게 흘러가도록 둬보고 싶다는 용감한 마음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변수가 여럿일 때 추가되는 변수는 감당이 힘들겠지만 변수 없는 인생에 하나의 변수 정도야 괜찮지 않을까?
최근에 읽은 아니 에르노의 탐닉(Se perdre)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나왔다. Je ne supporte que deux choses au monde, l'amour et l'écriture, le reste est noir.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 것 밖에 견뎌내지 못한다, 사랑과 글쓰기. 나머지는 전부 어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