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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Jan 13. 2020

유학 가기 좋은 나이가 있을까? 1편

당신이 아직 이십대라면.

서른의 나이로 첫 유학 길에 오르고 나서 '조금 더 일찍 해외 생활을 경험해보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어린 나이부터 유학을 가고 싶었던 마음과는 맞지 않게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한국에서 모두 졸업하고 남들 다 가는 교환학생조차 부끄럽게도 학점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로 다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방송국이나 잡지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강한 욕심 때문에 그 외의 다른 일들은 사실 관심 밖이었다. 그렇게 유학에의 꿈은 자연스럽게 현실에 떠밀려 갔고 그런 채로 잡지사에 취직했으며 몇 년 간은 그 일에 미친 듯이 몰두했다. 최선을 다했던 만큼 후회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온전히 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생의 방향을 틀어버린 지금, 내 앞에는 또 다른 가능성이 열려 있고 30대에는 공부를 끝마치고 외국에서 일을 찾는 데 최대한 몰입할 생각이다. 마치 한 시대의 문을 닫고, 다음 시대의 문을 활짝 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할 나위 없이 산뜻하지만 '왜 좀 더 일찍 공부를 하든, 워킹홀리데이를 오든 해외에서 살아보지 못했을까?' 생각했던 이유는, 뒤늦게 시작한 해외 생활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어릴 때 6개월이라도 이런 경험을 해봤더라면 좀 더 일찍부터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 때문이다. 사실은 프랑스에 도착할 때까지 처음 해보는 해외살이가 나랑 맞을까 하는 확신이 전혀 없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경험에서 추출할 수 있는 데이터가 0에 수렴했기 때문이다. 물론 막연히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내 앞에 놓일 일들 중 예측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가질 외로움의 크기, 내 인생에서 가족과 친구가 차지하는 비중, 돌발 상황에서의 위기 대처 능력 같은 걸 알 길이 없었고, 결국에는 하나하나 부딪히고 해결해가며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은 정말 실전이었다. 처음 해보는 자질구레한 일들이 너무 많았고, 어느 교육 과정보다 많은 것을 일상 속에서 배웠다. 집 계약하는 것, 집에 인터넷과 전기 설치하는 것, 효율적으로 장보고 요리하는 것 등 하나하나 부딪혀 가며 알게 된 삶의 노하우가 쌓여 한 발 두 발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되어 주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조금 더 성장한 나는, 여전히 살아남기가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내가 원하는 게 결국은 해외에서 정착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고 되는 데까진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 그 선택의 기반이 되어주는 건 자신의 경험이다. 잡지사에서 처음 어시스턴트를 하면서 에디터의 일이 잘 맞을 것 같다는 확신을 얻었던 것처럼, 경험을 통해 일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가면서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버릴지, 그래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고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가 없다는 것은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일이기도 하다.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는데, 어떻게 나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가 있을까?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왜 쌓는 것이 중요한지 그 의미를 이제야 진정으로 알게 됐다. 결국에는 이것도, 저것도 다 해봐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게 된다 해도 'A도 해봤는데, 그건 나와 안 맞아서'라고 말하는 것과 '그냥 딱히 원하는 게 없어서'라고 말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그러니 당신이 아직 이십대라면, 관심이 있는 일을 다양하게 경험해 보길 권한다. 이렇게 말 안 해도 요즘 청년들은 워홀이니 해외인턴이니 다 나보다 야무지게 살긴 하지만, 혹시 마음먹기까지 약간의 용기가 더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원하는 걸 해보길. 그 경험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별로라고 해도 그 '별로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데이터가 쌓인 것만으로도 그 경험은 충분히 가치를 다했다. 그러니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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