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의파랑 Jan 20. 2020

나는 여전히 사랑을 모르고

그것이 날 유독 외롭게 하는 겨울에. 

핑계 하나.

사실 나는 연애가 간절했던 기억이 없다. 외롭다, 연애하고 싶다는 것도 진심 없는 말버릇에 불과했지, 딱히 적극적인 노력을 할 정도로 진지하게 관계의 결핍을 느낀 적이 없다. 곁에는 다양한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을 만나는 걸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툭하면 카카오톡을 보내고, 심심하면 만날 약속을 잡고, 또 그렇게 술도 마시고 진지한 대화도 나누고 여행도 다니고 하다 보면 시간은 잘만 갔다. A와는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면서 행복했고, B, C, D와는 일 얘기를 하면 그렇게 말이 잘 통할 수가 없었으며 E, F와는 함께 나눈 추억 얘기를 하다 보면 정신없이 웃고 떠들 수 있었다. 이처럼 만나는 친구의 성향에 따라 다른 주제로 대화가 가능했기에 내면의 결핍을 채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친구들을 사랑하고, 함께 나눈 우정만으로 인생이 풍성했으니까. 

핑계 둘.

일이 바빴다. 매달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과물을 내고, 마감을 겨우겨우 쳐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누군가와 사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에너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일로 만나는 사람에게 특별히 관심이 생기지도 않았고, 일터에서 만난 낯선 이와의 관계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변수들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므로 내 삶에 굳이 연애라는 또 하나의 변수를 들일 틈이 없었다. 마감이 끝나고 나면 오래되고 익숙한 친구들을 만나 여전한 대화를 나누며 바람 잘 날 없는 우당탕탕 월간지 생활과 대비되는, 내 존재의 단단한 기반이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또 감사했다. 쌓아 올린 방어막은 갈수록 단단하고 견고해져 새로운 사람을 그 안으로 들이는 것은 점점 어려워졌다.  

어느 날 스쳐지나간 시청 앞이 이렇게 예뻤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의 핑계가 없어진 곳에서 산지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오래된 친구들은 없고,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던 일도 없다. 이제 정신없이 바쁘지도 않고, 인지하지 못한 채로 스쳐가는 계절도 없다. 스스로를 돌볼 틈도 없이 내달리던 삶을 멈추고 숨을 몇 번 골랐더니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고 인생에서 중요한 게 대체 무엇일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누구보다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 스스로의 취향과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원초적인 단계의 사랑이 그립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사랑을 잘 모른다. 사랑을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로 생각하면서도 정작 연인 사이의 사랑에는 무지하고, 온 세상에 사랑을 뿌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주고받는 사랑에는 영 젬병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에 나누고 싶은 사랑의 크기만큼이나 한 사람에게 쏟아부을 사랑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하나가 나의 우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려운 것일지도. 또, 이 모든 걸 별 거라고 생각하다 보니 사랑이 겁나는 것일지도.

뒤늦은 새해 소망이 있다면, 올해는 다른 어떤 개인적인 성취보다 사랑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숙해지는 다른 것들에 비해 사랑에 있어서는 여전히 미숙한 내 자신이 작아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그만큼은 안 되겠지만, 내 소중한 친구들의 빈자리를 대신할 정서적인 유대가 가능한 어떤 사랑이 있다면 좋겠다. 내 세계가 전복된다고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유학 가기 좋은 나이가 있을까? 1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