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가 생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도시를 방랑하는 여행자처럼 지냈던 첫 해가 지나갔다. 1년 동안 파리의 모든 풍경이 ‘내가 파리라니!’라는 문장과 함께 하트가 범벅된 채로 내 앞에 나타났고, 그 비현실성은 내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이나 소설 속 한 챕터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도시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와중에도, 애증의 감정이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파리는 늘 내게 파리였다. 그러니 이 도시를 향한 애정의 색이 쉽게 바래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요즘은 점점 파리가 일상적인 공간이 되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지난주, 파리 13구역으로 이사를 했다. 차이나 타운으로 잘 알려진 곳이며 아시안 마켓이 즐비해 있는 동네다. 파리보다는 한국의 신도시와 더 닮은, 조금 더 현대적인 건물과 상가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나 역시 29층짜리 건물에 사는데 파리에서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은 흔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아하고 엘레강스한 오스만 스타일의 건축양식으로 대표되는 파리 다움은 느낄 수 없지만, 이 동네는 파리의 어느 거리보다 더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친다. 수업을 마치고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학생들의 들뜬 공기, 장바구니를 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발걸음, 퇴근을 서두르는 직장인들의 얼굴에 묻어나는 피로, 하루 장사를 끝내는 상인들의 부지런한 움직임 등 잡다하게 뒤섞이는 일상의 조각들이 나를 자연스레 도시의 일부로 녹아들게 만든다. 매일매일 낭만이 넘쳐흐르지는 않을지라도, 이방인인 내게 곁을 내주는 익숙한 도시의 풍경들이 더욱 반갑다.
이사를 한 후에는 운동을 등록해서 다니고 있다. 서울에 살 때는 요가, 필라테스, 발레, 크로스핏, 헬스, 플라잉 요가 등 다양한 장르의 운동을 섭렵해왔는데 어쩐지 파리에 와서는 그만큼의 용기가 안 나 혼자 할 수 있는 러닝이나 홈트 위주로 혼자 훈련을 하다가, 겨울이 길어지면서 결국에는 헬스장에 등록을 했다. 일단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는 점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한 달에 35유로짜리 옵션을 선택하면 원하는 시간에 아무 데나 헬스나 기구 운동을 할 수 있는 데다 필라테스, 요가 등의 그룹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한두 번 정도 필라테스 수업에 참석해봤는데,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운동을 하는 경험 역시 특별했다. 프랑스어로 진행됐던 수업을 별 어려움 없이 잘 따라갔다는 뿌듯함과 함께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특히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붐비는 헬스장에서 평범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운동을 하다 보니 사람 사는 거 어딜 가나 다 똑같다는 자각과 함께 남들과 별 다를 것 없이 운동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왠지 모를 위안을 느꼈던 것도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마지막 한 조각은 역시 사람들의 몫이다. 일터에서든 학교에서든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친해지는 사람이 생긴다는 게, 그리고 별 불편함 없이 다수의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게 점점 날 이곳의 일부로 만들고 있다. 상황에 따른 적절한 표현 방식을 안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 결국에는 그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한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할 때 진정 그 삶의 방식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방식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때, 그 순간에 어쩌면 나는 파리에 한 번 정을 줘보기로, 한번 지지고 볶으며 살아보기로 마음을 정한 게 아닐까?
아마 나는 오래도록 파리라는 도시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단지 파리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나 분위기 이상으로, 파리지엔의 자유로움이 좋아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섞임으로써 가능한 개별성이 좋아서, 아마도 이곳에 남아 인생의 가치들을 배우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비가 쏟아부을 때 우산이 없다고 걱정하는 대신 비를 맞고 아름다운 골목골목을 누비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일이 여전히 좋기 때문에, 나는 2년 차 파리지엔으로 기꺼이 살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