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엔들과 친구가 되다
3개월의 아르바이트 계약 기간이 끝났다. 내가 마지막 날인 걸 알고 있던 맞은편의 서점 친구들이 일 끝나고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해서 바로 옆 좁은 골목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어제는 금요일 저녁이었고, 퇴근한 사람들은 테라스에 앉거나 키가 큰 테이블에 서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실내의 바 옆에 섰다. 다섯 잔의 레몬 맥주를 주문을 하고 나니 서점 사장님이 계산을 하러 오셨다. ‘Santé’와 ‘건배’를 반복하며 다섯 개의 잔을 부딪히고 나서야 한 모금을 들이켤 수 있었고, 레몬 향이 진한 맥주가 생각보다 더 상큼해서 나는 금세 꿈결 속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인심 좋은 주인아저씨는 따끈따끈한 바게트와 치즈를 주었고, 사이좋게 찢어먹은 그 바게트 한 조각은 지나치게 따뜻하고 또 부드러웠다. 파리 골목 하나에 숨겨진 작은 술집 안,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만들어내는 어지러운 소음과 낮은 조도의 조명, 탄산감은 없지만 상큼한 레몬 맥주, 촉촉한 바게트 빵의 결… 이 모든 감각 하나하나가 도시에 홀로 떨어진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결국에는 지금의 이 온기가 너를 살아있게 할 거라고, 이대로 다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바에 서서 웃고 떠들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헤어지는 건 너무 슬프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가 어차피 우린 여기 계속 있을 건데, 자주 들리라는 다정한 대답까지 듣고 나서야 이 관계도 여기서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그 흔한 인스타그램 아이디 하나 모르고, 서로의 전화번호도 물론 모르지만 그냥 9구에 위치한 그 오래된 서점에 가면 언제든 친구들이 반겨줄 거라는 걸 아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술집의 무거운 문을 밀고 나가 촉촉한 저녁 공기가 우리를 맞던 골목에서 이제는 진짜 헤어질 때가 되었고, 친구들의 마지막 인사는 ‘A bientot!’였다. 나는 ‘이제 어차피 당분간은 못 보는 거 아니야?’ 라며 장난스레 입을 삐죽였고 옆에 서 있던 샤를이 아니라고, 약간의 친밀감이 담긴 ‘곧 또 보자(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의미에 가까운 거라고 덧붙였다. 그제야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양손을 흔들며 기꺼이 인사를 건넸다. 며칠간 조금 울적했던 이유가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얘들을 더 이상 못 본다는 거였는데, 어쩐지 이 관계의 마침표가 애틋해서 앞으로도 좋은 관계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싹 틔웠다.
시끌벅적한 마지막 인사가 끝나고, 파리의 골목에 혼자 남은 나는 낯선 도시에 남겨 둔 관계의 조각에 대해 생각한다. 이 조각들이 하나 둘 쌓이면 언젠간 이 곳에 비로소 속해있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나의 도시에 적응한다는 것은 길을 잘 찾고 동네 맛집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수많은 작은 관계들을 남겨 마음속 빈 공간을 메워가는 일에 가깝다. 어학원에 갇혀있던 나를 잠깐이나마 파리의 일부로 만들어 준 나의 첫 일터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사귀었고 잠시나마 이방인으로서 느끼던 외로움도 덜어낼 수 있었다. 동떨어져있는 것 같던 파리지엔의 삶에 별 일 없이 스며들었다는 것, 29년을 서울에 살았던 내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파리에서만 살고 있는 친구들과 알고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 내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고 계속 될 해외 생활에 설렘을 품게 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왔고 가끔은 말이 안 통해서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지만 그래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게 약간은 벅차기도 했다.
아무래도 나는 계속해서 인간 사이의 온기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 일상 속의 자잘한 애정들이 얼마나 나를 안심시키는지, 어떻게 낯선 곳에 툭 떨어져도 즐겁게 살아갈 용기를 주는지, 왜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고 느끼게 해 주는지에 대해 말이다. 어쨌거나 온 세상에 사랑을 퍼트리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빛을 보는 잠깐의 순간들이 좋다. 세상에 만연한 혐오와 적대감은 가끔 숨을 쉬기 힘들게 만들지만, 타인에 대한 애정이 꽃피는 이런 순간들만큼은 살아갈 이유를 주니까. 그러니 나는 오래도록 '희망'편을 계속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