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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Mar 07. 2020

그래서 네가 얘기하고 싶은 게 뭔데?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공부에 대한 단상

아주 사적인 먹구름이 한차례 지나간 금요일 오후, 이번 학기에 완성해야 하는 12페이지 분량의 리포트를 위해 두 시간 가까이 논문과 전자책, 신문 기사를 눈이 빠지게 뒤지다가 결국엔 이 글을 쓸 타이밍이 지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내가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는 곳은 파리 12 대학 부설의 어학원으로, 대학 부설이라 그런지 우리가 프랑스 대학에서 학사나 석사를 할 때 마주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업이 많다. 문법이나 작문, 듣기를 훈련하는 어학원식 수업도 물론 있지만 프랑스 학생들과 같이 듣는 참여형 수업이나 경제, 미디어, 영화, 패션 등 각자가 원하는 분야의 교양 수업도 있고, 지금 내가 골머리를 썩고 있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글쓰기’를 훈련하는 수업 같은 것도 있다.

이 수업의 목표는 12페이지 분량의 리포트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적절한 주제를 설정하는 법이나 전체적인 내용 구성을 설정하는 법, 논리적인 주장을 펴는 법 등을 배운다. 물론 주제는 각자가 정한다. 관심 있는 분야에서 논쟁이 될 만한 주제를 잡고, 자신만의 논리를 통해 적당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한 학기 동안 해야 하는 일이다. 첫 수업에서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설레고 또 두려웠다. 일단 12페이지의 분량은 한국어로도 채우기 쉽지 않은데 프랑스어로 가능할까 겁이 났고, 한편으로는 내가 관심 있는 이슈에 대해 파고들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기도 했다. 그 첫 수업 이후 나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12페이지의 분량이 버겁지 않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공부와는 담을 쌓았다고 느낀 게 무색하게 실로 오랜만에 학문적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였다.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뇌가 활성화되는 게 느껴졌다. 뇌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탈탈 털어내는 느낌이 들어 마치 주말 아침에 창문을 활짝 열고 대청소를 한 사람처럼 개운했다.

일, 성취감, 행복, SNS, 소비 패턴 등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들을 맴맴 돌다가 어떤 주제든 간에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생각했다. 예를 들면, ‘지속 가능한 패션’은 좋은 주제가 아니다. ‘지속 가능한 패선은 인류를 구할 수 있는가?’로 정확히 문제를 제기해야 비로소 좋은 주제가 된다. 그렇다 보니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야 되고, 주제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설정할 경우 논리를 전개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다 보니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분야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키워드를 수집한 후에도 좋은 질문을 찾기까지는 한참이 더 걸렸다. 대충 휘갈긴 문장 위에 몇 번씩이나 검은 선이 그어졌고, 단어가 수도 없이 바뀐 후에야 마침내 한 문장을 완성해냈다. '소셜미디어가 개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장려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는 소셜미디어가 자신을 표현하는 능동적인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모든 욕구는 조작된 결과라는 결론을 도출해보려고 한다. 아직 참고 도서나 기사를 찾아보는 단계라, 논리를 전개하면서 조금씩 수정해나가겠지만 일단은 사회학적인 측면이나 혹은 마케팅적 관점에서 꽤나 흥미를 갖고 있는 주제라 앞으로의 공부가 기대가 된다.

수업시간에는 각자 주제와 전개 방향을 설정해 와서 교수님과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 내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교수님의 코멘트를 통해서도, 아니면 다른 친구들의 아이디어를 들으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하나 둘 떠오른다. 그것들을 조심스레 포획해 겨우겨우 만들어 낸 문장은 또 다른 질문을 낳고, 그렇게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접하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사고가 확장된다. 스스로 연구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교육 방식은 사실 늘 하나의 답이 있는 시험 문제를 푸는 게 익숙한 나에게는 유난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어떠한 제한 없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다.

이미 잘 알려진 프랑스의 입시시험 바칼로레아는  주어진 질문에 자신만의 논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가로 평가된다. 맞는 답은 없다. 그러니 결국엔 개떡 같은 주장도 찰떡같은 논리로 설명하면 또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 프랑스식 교육이지 않을까? 아마 그런 방식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좋아하고, 레스토랑에서든 카페에서든 남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기는 이곳의 문화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관심 있는 주제를 파고드는 공부는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으로 귀결될 것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작은 믿음이 생겼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답도 없는’ 상황을 마주해왔던 내가 부디 이번 수업에서 만큼은 나만의 답을 찾아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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