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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Apr 04. 2020

다시 한 발짝 나아가는 이야기

혹시나 프랑스 경영 석사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ESSEC에 붙었다. 2라운드랑 3라운드에 HEC Paris랑 ESSEC 두 군데에 넣어보고 둘 다 안 되면 4라운드에 다른 학교들을 우르르 넣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다행히 두 번만에 입시 과정을 끝낼 수 있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따로 면접 과정 없이 서류 심사 만으로 붙었고 적지 않은 금액의 장학금도 받았다. 누군가 이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 검색을 하게 된다면,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나 역시 지원 과정 내내 수도 없이 검색 창에 학교 이름을 쳐보면서 이 학교에 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발버둥 쳤지만 생각보다 정보가 많지 않아 아쉬웠기 때문이다. 


시작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파리에 도착했을 때, 이 도시에서 한 두세 달 정도 살아보며 처음으로 앞으로 오래 이곳에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을 바쁘게 살던 도시를 도망치듯 떠나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상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곳에서 비로소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았다고 생각했고, 그 후로는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멋들어지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저냥 사는 건 취미가 아니고 이왕 남을 거면 간지 나게 살고 싶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생각하게 된 게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경영 사립학교를 들어가서 패션이나 럭셔리 쪽 글로벌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공부 자체에는 큰 흥미가 없지만, 취업을 잘하는 일은 꽤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학교를 찾을 때 거의 취업률이나 진로 방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일단 작년 1월 말에 파리에 도착한 후로 5월 말까지는 살짝씩 진로 고민을 시작하면서 거의 프랑스어 공부에만 몰입했다. 수업 시수가 많기도 했고 당시 내 수준이 반 친구들에 비해 한참 떨어져서 그냥 따라가는 것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를 무사히 끝낸 후, 프랑스어 수준이 많이 올라온 채로 DELF B2를 봐서 붙었고 대학원에 가겠다는 마음을 처음 먹고 준비를 시작한 건 그 이후부터다. 


GMAT

내 인생에서 GMAT이나 GRE를 보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역시 사람이 필요하면 다 하게 되는 것 같다. 두꺼운 책 두 권을 온라인으로 주문한 건 5월 경인데, 막상 문제집을 편 건 8월 중순부터다. 그전에 모의고사 한 회 풀어보고 빨간 줄이 죽죽 그어진 문제집을 보며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득한 마음에 한동안 책을 치워두고 대학원을 가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 고뇌하며 여름을 다 보냈기 때문이다. 파리에 놀러 온 엄마 아빠한테 조언을 듣고도 엄두가 안 나서 끊임없이 방황하다가 결국엔 8월 중순이 돼서야 마음을 다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일단 10월 말 즈음으로 시험을 잡았고, 그냥 한 번에 끝내자 생각하고 준비했다. 한 번 보고 아니면 마는 거라고 마음 편히 생각했다. 어차피 평생 대학원 가는 거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까 운명에 맡기자 하면서. 

지맷이나 토익이나 한국이 훨씬 저렴해서 그 기회에 한국에 가서 시험을 봐야겠다 생각했고, 시험을 끼고 앞뒤로 일주일 정도 해서 2주 정도 귀국 일정을 잡았다. 금요일에 지맷, 토요일에 토익 스피킹, 일요일에 토익까지 연달아 봤었고 사실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시험 등록을 할 때만 해도 이렇게 무리일 줄은 몰랐던 일정. 아무튼 지맷 준비를 시작했을 때는 시간이 두 달 정도밖에 안 남았고, 학원을 다닐 수도 없는 입장이라 오전에 프랑스어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붙잡고 살았다. 영어 독해력은 이미 다 죽은 지 오래라 하루에 이코노미스트 기사 하나씩은 요약정리하면서 영어 단어도 미친 듯이 외워댔다. 생각해 보면 그때 엄청 열심히 했는데 그냥 그렇게 하면 나 스스로가 쓸 데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위안이었다. 

GMAT 공부법은 대강 야매로 해치운 내가 언급할 건 아닌 것 같고(네이버에 치면 쏠쏠한 팁이 많이 나오고 나도 거기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660점을 받았다. 목표치보다 조금 아쉬운 점수긴 했지만 또 뭐 영 쓸모없는 점수도 아니어서, 조금 더 하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접어두고 그냥 원래 계획한 대로 한 번 보고 치웠다. 

에세이 

사실 어느 자기소개서든, 그게 채용이든 학업이든 간에 지원동기나 앞으로의 플랜에 대해 쓰다 보면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 학교라는 게 보이기 마련이다. 나에겐 ESSEC이 그랬다. 사실 HEC가 객관적으로 더 좋은 학교인 건 명백하지만 어쩐지 나와는 맞지 않는,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면 ESSEC의 에세이 문항을 쓰면서는 내 커리어를 위해 꼭 필요한 학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게 아마 당락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패션잡지 에디터라는 흔하지 않은 경력을 이용해 나는 이런 이런 경험이 있고, 이런 안목과 능력이 있으며 이 학교에서 글로벌한 시야나 마케팅적인 감각을 갖춘다면, 이런 이런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흐름으로 썼다. 학교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포인트를 이용해 그게 나한테 왜 필요한지를 어필하고 내가 추구하는 목표와 학교의 방향성이 일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경영 학교들은 아무래도 자신이 뽑은 학생들이 낼 성과가 중요할 테니까 나는 이런 성과를 내기 충분한 사람이고 앞으로 미래에 가고자 하는 회사에서 탐낼 만한 인재라는 것에 초첨을 맞췄다. 


추천서 

추천서 때문에 대학원 포기할까 생각했던 사람이 나다. 그 정도로 제일 힘들었다. 대학 생활을 뭐 알차게 하지도 않았으니까 인연이 이어지는 교수님도 없었고, 그나마 학창 시절에 좋아하고 존경하던 교수님이 딱 한 분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분에게 부탁드려 추천서를 받게 됐다. 진짜 처음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게 대학원 결과 기다리는 것보다 더 떨렸다. 위에서 말했듯 2주 동안 한국에 들어갔을 때 교수님 사무실에 들러서 얼굴 보고 정식으로 부탁을 드렸었고 그때 교수님의 ‘딱히 성적이 좋지도 않았네’ 하는 팩트 폭행 한 마디에 뼈를 맞고 잠시 현타가 와서 역시 나는 대학원에 갈 만한 인재가 아니야 하며 땅굴을 1킬로미터 정도 팠지만, 아무튼 결론적으로는 잘 써주셨다. 

그리고 회사 추천서는 내 경력 전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선배한테 받았다. 어시스턴트와 디렉터로 만나 막내 기자와 디렉터의 사이가 되기까지, 그 이후 에디터로서의 삶에도 전반적인 영향을 주었고 그리고 결국 대학원에 가겠다고 회사를 그만둔다 했을 때도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고, 하고자 할 때 하라고 북돋아주었던 선배라 그 이상의 인물이 없었다. 근 7년 만에 연락드리는 교수님 보다야 심리적으로 훨씬 가깝고 최근까지도 연락을 주고받은 선배긴 했지만, 어쨌든 부탁은 어렵다.  

ESSEC은 추천인 이름, 직위, 메일과 추천인을 고른 이유를 쓰면 그 추천인한테 링크가 보내지는 형태로 추천서를 받는 과정이 진행된다. 직접 항목을 보진 못했지만 듣기로는 지원인의 여러 가지 능력에 대한 정량적인 평가+그에 대한 코멘트를 남기는 식으로 답변을 해야 한다고. 좀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일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지원하는 사람은 나니까 상대를 귀찮게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하더라도(이것 때문에 계속적으로 마음고생했다. 흑) 링크는 무사히 받으셨는지, 답은 보내주셨는지, 별 문제는 없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꼼꼼히 챙기는 게 낫다. 

마무리

다 적고 나니 딱히 도움이 되는 얘기인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단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때가 있으니. 너무 가고 싶어서 그랬는지 붙었다는 연락을 받고도 한참을 얼떨떨한 채로 있었다. 꿈꾸던 일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는 것도, 결국에는 프랑스에 더 오래 체류하게 됐다는 것도 현실감이 없었다. 그다음에는 설레고 들뜨기 시작했다가 그것도 한 3일이 지나고부터는 점차 사그라들더니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고개를 든다. 하나하나 하고 싶은 걸 이뤄가는 건 성취감도 크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괴롭혀야 하는 과정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 불구덩이인 걸 알고 뛰어들어야 하는 마음이 영 쉽지가 않은 거다. 아무래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자유를 잃고 집에 갇힌 지 19일째라 인생의 허무와 외로움에 잠식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 인생 이미 노빠꾸로 앞으로 나아가 버린 만큼 또 잘 살아남아본다. 또 씩씩하게 써나갈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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