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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Apr 25. 2020

나는 조각 밖에 남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생각은 끝내 문장이 되지 못한 채 하루에도 몇 번씩 흩어지고 만다.

파리의 시간은 부지런히 흐른다. 너의 괴로움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네 사정은 알 바 아니고, 너를 두고 나는 유유히 갈 길 가겠다는 그런 무심한 태도를 유지한 채. 어느덧 한 달하고도 반이 넘었다. 하루하루를 넘기는 일은 여전히 버겁고, 사는 건 여전히 별일이다. 

장을 보거나 산책을 할 때, 아니면 저녁 7시 이후 조깅을 할 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멀찍이서 인사가 들려와 설마 나인가?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상대의 얼굴이 보인다. 어느 날은 뛰다가 마주친 상대의 파이팅을 받기도 한다. 그럼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가 되어 힘껏 입꼬리를 올려 웃어준다. 아마도 다들 별 거 아닌 인사 몇 마디가 그립고, 고립감은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결국에 나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느껴왔던 사람임을 인정하고 만다. 누군가를 안아주고 누군가에게 안기는 것을 좋아하는 줄은 알았어도, 그게 없다는 게 이렇게 괴로운 줄은 몰랐다.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튀어나와 버린 적도 있었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에게 말없이 팔을 벌려 위로를 받은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포옹은 크고 작은 감정적인 교류의 궁극적인 행위였음이 분명하다. 아무래도 사람을 안기는 어려운 시절이라 그것이 나를 외롭게 할 때면 따뜻한 물을 쏟아내는 샤워기 아래 한참을 서 있는다. 쓸데없는 생각은 쓸려 내려가고 온기만 나를 감싸기를 바라. 

요즘엔 이상한 취미도 생겼다. 평소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들의 사이트를 들어가 한두 시간 아이쇼핑을 하는 것. 대부분의 일상이 멈춘 와중에도 계절을 맞은 신상은 끊임없이 나오고, 어느 세계의 시간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사소한 위로가 된다. 이런 게 유행인가 싶어 마음에 드는 스타일은 장바구니에 담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사지 않고 창을 닫는다. 옷을 고를 때는 그 옷을 입고 나가는 상상을 하면서 들뜨다가 딱히 갈 곳이 없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물욕은 사라진다. 흥미로운 건 홈웨어나 잠옷의 카테고리가 예전과 달리 사이트 상단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긴 나 역시도 집에서 입을 편한 옷을 찾고 싶어 이 이상한 습관을 시작하게 되었으니까 다른 사람이라고 뭐 크게 다르겠나 싶다. 코로나가 바꾼 일상 중 하나가 되겠지. 

꽤 자주 코로나가 바꿔놓은 가치관에 대해 생각한다. 거시적인 목표보다 매일의 삶을 아껴주는 것을 인생의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것.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은 점점 커져간다. 석사가 끝나고 일자리를 얻어 새 아파트를 구할 때 조건을 상상하는 것은 하루의 일과가 됐다. 도망이 자유롭지 않을 거라면 발붙인 현실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으니까. 일단 투룸에 발코니가 있어야 하고, 욕조가 있으면 좋겠고, 크고 작은 식물들을 많이 둘 거다. 주방에는 꼭 베이킹 재료와 도구를 구비할 거고, 아마 울림이 좋은 스피커와 턴테이블 같은 것이 그다음이 되겠지. 때로는 어떤 분위기를 상상하기도 한다. 오븐에 직접 구운 쿠키나 케이크를 벼룩시장에서 사 둔 빈티지 식기에 담아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만끽하는 늦은 아침의 행복감 같은 것. 

아직은 터무니없지만 적어도 기분은 좋게 만들어주는 상상을 한참 한 뒤에는 그걸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야 할까 생각한다. 아무래도 어른이 된다는 건, 눈 앞에 놓인 두 가지의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남은 하나와는 영영 작별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닐까? 부정하고 싶어서 발버둥 치다가도 어느 틈에 한풀 꺾여버린 스스로를 발견하고, 남아 있는 서글픈 감정을 서서히 들이켠다. 담담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두려워하던 것에 어느덧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을 받는다. 

4월을 지내며 쓰고 싶다는 생각은 가득했는데 하나의 글을 쓰는 게 너무 힘들었다.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니 대체 어느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을지 잘 모르는 상태가 됐다. 며칠을 쓰다가 포기하다가 무턱대고 몇 개의 문장을 남겨두고 창을 닫기를 반복했다. 남겨진 조각들의 순서를 짜 맞추고 다듬다 보니 결국에는 하나의 글이 되었고, 이음새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아득해 보이던 흰 종이를 검은 글자들로 채웠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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