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100 가까이에 도달하는 것일까
기억한다. 이동제한이 풀리기 직전에 쓴 글이 마지막이라는 걸. 그러니 새 글을 안 쓴지는 한 달이 넘었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은 꽤 자주 나를 괴롭혔다. 이 곳을 비운 동안, 학기의 마지막 과제를 끝냈고 이번 주부터 대략 두 달간의 여름방학에 접어들었다. 도무지 글을 쓸 생각을 못했던 건 물론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바깥세상이 역시 그만큼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는 걸 기꺼이 확인하느라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말고사 대신 매주 이어지던 중간 과제들과 12페이지에 달하는 기말 리포트를 조금씩 완성하느라 도저히 다른 글을 쓸 에너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리미리 했으면 물론 좋았겠지만, 나는 글이나 과제는 결국 마감이 해줄 거라는 걸 믿는 사람이라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순간부터 빠듯하게 매일 몇 페이지씩 꾸준히 프랑스어 논문을 읽고 글을 썼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논문이 술술 읽히고 그만큼 내용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럴 때면 프랑스어가 늘은 것 같아 엄청 뿌듯하고 또 이게 언어를 공부하는 맛이지 싶다가도, 어떤 날은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읽어도 그저 외계어일 뿐, 한 글자도 눈에 안 들어오고 프랑스어 실력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기분이 든다. 그런 날은 프랑스어와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지고 나는 아마 평생 이방인으로 남겠지 싶어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한다. 언어와의 간극은 낯선 곳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고 가끔은 잘 살아남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원래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이고 스스로 파놓은 절망의 늪에 발을 딛지 않으려 하지만 그게 맘처럼 되나.
어제는 새벽까지 잠이 안 왔고 파리 시간으로 새벽 한 시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누워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시간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파리에서도 새벽 한 시는 외로운 시간이고, 서울 기준으로도 아침 여덟 시는 누군가의 연락이 오기엔 이른 시간이다. 하루를 끝내고, 하루를 시작하는 그 사이의 허공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며 아마도 당분간은 언어 문제든, 소속감의 문제든 어느 중간 지점에 머무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게 점점 덜 슬퍼지고, 좀 더 단단하게 버텨나갈 뿐이다.
언어 공부는 확실히 자기와의 지루한 싸움이고, 그 싸움은 우리를 구름 위로 데려가기도 땅 속으로 처박아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해도 해도 새로이 할 것이 생기는 것, 어떤 날은 다 아는 것만 같은 환희에 들뜨다가 다음 날이 되면 하나도 모르는 것 같은 절망감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 스스로에게도 너무 조급하지 말고, 차근차근해나가면 된다고, 중간중간 빈 곳은 차차 메워나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올여름에도 지금처럼만 틈틈이 쌓아나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