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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Jun 28. 2020

우리는 다시 눈부신 여름에 와있고

계절이 주는 작은 위로를 끌어안는 요즘의 날들

    얼마 전 낭트 근처의 작은 도시로 여행을 다녀왔다. 나에게는 그 여행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의식 같은 것이었다. 떠나기 전 파리의 날씨는 6월 중순이라는 게 무색하게 우중충하고 흐리고 추웠지만 여행 날부터는 비교적 햇빛도 쨍하고 기온도 올랐으며 그 후로는 여름이라고 이름 붙여도 무방할 날씨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다녀오면, 여름이 시작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비교적 가벼워진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거주지 반경 일 킬로 내에 갇혀 있는 삼 개월 동안 생각보다 더 지쳐있었던 게 분명한 나는, 낭트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조차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 괴로웠다. 그렇게 기대하던 여행길 위에서도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가는 데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여행으로라도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어 보려고 했던 자잘한 노력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울고 싶었다, 약간은.  

    내가 지내던 곳은 낭트에서도 차로 40분은 더 들어가야 도착하는, 정말 소들이 사람보다 많을 정도로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망망대해처럼 이어지는 초록빛 풀밭을 한참 보고 있으니까 마음이 진정되는 것도 같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거라곤 하늘과 초록,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평선 하나가 다였으니까. 도시에서부터 이고 지고 온 고민들이 복잡한 머릿속을 떠나 하나 둘 어딘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늘어지는 저녁 햇빛을 받으며 느리게 산책을 하고, 저 멀리 어디선가 소가 우는 소리를 듣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다 같이 맥주를 마시고, 다음날 아침 새소리에 잠을 깨는 그런 평화로운 날들은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어느 날 저녁에는 집과 가장 가까운 기차역에 내렸는데 프랑스 소년 하나가 다가와서는 ‘프랑스어 할 줄 알아?(Vous parlez français?)’라고 말을 건넸다. 요즘에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시골 작은 마을에 동양인 애들이 몇 있으니 호기심이 동한 것 같다. 그 아이는 이곳에 산다고 했고, 우리는 어떻게 여기 오게 됐는지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가 그럼 다음에 보자,라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길어진 햇빛과 더운 공기, 그리고 더위에 볼이 빨개진 낯선 시골 소년까지 약간 환상동화 같은 그 당시의 분위기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너무나 다른 세계의 누군가를 마주치고 말을 섞는다는 건, 확실히 삶에 번쩍이는 영감을 준다.

    낭트에 있는 경영학교에 갈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 사는 게 지치기도 하고, 낭트는 파리에서 기차로 두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학교가 많아 학생들이 살기 좋다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월세나 생활비도 훨씬 저렴하고. 어쨌든 다른 학교에 붙어 없던 일이 된 후론 잊고 살고 있었는데 낭트 강변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문득 그 생각이 났다. 강변에서 책을 읽다 낮잠을 자는 사람들, 둘셋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며 보드게임을 하는 사람들, 자전거로 스쳐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그들의 인생을 상상하다가 이 정도 규모의 도시에 살아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게 나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럼 그것 또한 나쁘지 않았겠다 싶으면서. 

    언제부턴가 생산성을 내 존재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바쁘게 일을 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스스로가 가치 없는 존재가 되는 것 같은 강박에 갇혀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들이 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끔은 ‘바쁘고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게 기본 디폴트 값이어야 되는데 나 왜 이렇게 살만하지?’ 같은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살 만해서 기쁘고 즐거워야 되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프랑스에 살면서 느리고 여유로운 삶의 가치를 배우면 배울수록 지난 몇 년간 치열하게 살아온 한국에서의 삶과 괴리가 커지고, 그에 맞춰 생겨나는 고민들은 종종 날 흔들곤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런 고민들이 원하는 삶으로 나를 데려갈 거라고 믿는 것만이 유일한 위로가 되고, 아무래도 여름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다시 돌아온 파리에서 며칠을 지냈다. 떠난 지 딱 일주일이 된 일요일 오후, 예전에 사놓은 로제 와인을 이제야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며 잠옷 바람으로 이 글을 쓰는 나는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자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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