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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Jun 30. 2020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요

대답을 찾아 가는 중에 자꾸만 떠오르는 보고 싶은 얼굴들이 있다.

낭트에 있는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영업이 시작하기 30분 전이라 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아 각자 마실 음료를 시켰고 나는 자연스레 포르투 와인을 주문했다. 술을 한 모금 마시는데,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났다. 어릴 때 가족 여행을 다니면 아빠는 밥을 먹으러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술을 먼저 시키고 난 후 찬찬히 메뉴판을 보곤 했다. 당시에는 ‘아빠는 술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몇 번은 핀잔도 줬던 것 같은데 어느덧 다 자란 나는 별생각 없이 아빠랑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던 것이다. 남들이 커피도 마시고 콜라도 마실 때, 늘 자연스럽게 술을 시켰고 한 번도 그것에 대해 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한번 아빠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니 어쩐지 자꾸 ‘아빠 딸은 아빠 딸인가 보네’ 싶은 생각이 들어 자꾸 웃음이 난다.


평생 붙어살던 가족들이랑 떨어져 지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자꾸 그들이 생각난다. 어제도 집 근처 큰 공원을 산책하다가 보랏빛 꽃 한 뭉치가 피어있는 걸 보고 엄마가 보라색을 좋아하는 게 생각이 나서 사진을 찍었다. 어떤 가게를 들어가서 구경을 하다 보면 이건 동생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중에 데려와야겠다고 다짐한다. 외로운 타지 생활에 동기부여를 주는 것 중 하나는 언젠가 이곳에 멋지게 자리 잡아서 가족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좋은 곳도 보여주고, 좋은 음식도 먹으면서 덕분에 내가 누리게 된 작은 행복들을 공유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 상상 속의 우리가 너무 좋아서 자꾸만 그래도 잘 버텨야 된다고, 잘 살아남겠다고 생각한다.



삶이 굴러가는 속도가 느리고 나와 주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다 보니 자꾸 근본적인 가치, 이를테면 사랑, 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삶이 팍팍할 때는 그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였다면 요즘엔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많아진 만큼 어떻게 해야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한다. 또 예전에는 그냥 내가 잘나서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누군가와 함께 각자의 기쁨은 물론이고 슬픔까지도 나누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인생은 결국 함께일 때 빛나는 거 아닐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하하하) 하물며 어제 놀러 간 아는 언니 집에서 언니네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는 데도 너무 행복한 거 있지! 고양이가 좋아하니까 나까지 기뻐지는 그런 기분이었다고.


얼마 전 여행에서 Noirmoutier라는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에 갔다. 평화롭고 한적한 이 마을에는 은퇴를 하신 노인분들이 많이 사시는 듯했다.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가거나, 부부가 함께 물에 들어가 파도를 타며 웃음을 터트리거나 작은 담요 위에 누워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는 풍경을 보고 나니까 젊은 날 이래 저래 넘어지고 부딪히더라도 열심히 살아서 저런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삶이 꽤 살아볼 만하겠다는 기대감도 생기고. 본받고 싶은 삶의 모습을 보는 건 이래서 중요하다. 실체가 있는 꿈을 꾸게 해 주니까. 앞으로도 다양한 삶의 풍경을 수집하고 나누며 나를 위한 무언가를 찾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지금의 삶을 있게 한다. 그리고 갑자기 이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되어준, 아끼는 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쉬이 꺼지지 않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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