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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Jul 14. 2020

한국의 공기 냄새가 달다

이 축축한 공기마저 좋다, 너무너무.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은 늘 사소한 계기에서 시작된다. 조도가 낮은 조명을 켜고 유튜브에서 나오는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책상 옆에 있는 창문을 열었는데, 공기가 너무 달다는 것과 같은 뻔한 계기에서부터. 비행기에서 내려 통로를 걸을 때 느껴졌던 습한 공기의 냄새처럼 파리의 그것과는 너무 다른 서울의 밤공기가 '아, 진짜 돌아왔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글 하나 쓰려면 적절한 무드가 필요한 나는 이곳에 2주 간 머무는 게 나쁘지 않겠구나 생각한다.

    집에 오는 것은 별 생각을 하게 만든다. 출국을 위해 CDG 공항에 도착해 이런저런 준비를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집에 간다는 실감이 나고, 평소엔 가급적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 야릇한 안정감이 너무 좋아서 오늘도 눈물이 날 뻔했다. 되게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마음을 약해지게 만든다. '그래, 잘 버티고 살았다'하는 스스로에 대한 격려와 이제 당분간은 편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겠다는 안도가 뒤섞여 늘 울컥하는 마음이 흘러나온다. 이번에는 귀국 자체를 오래 고민하고 망설였기에 감정이 더 크게 왔다.

    오랜만에 직항을 타서 그런지 비행 자체가 생각보다 편안하고 짧게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기내에서 한 시간씩 밖에 못 자서 비행기 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는데 오늘은 다행히도 한 세네 시간은 잘 수 있었다. 급격한 찬 공기에 코가 막혀 고생한 것 빼고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일단 비행기 자체에 탑승객이 적어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막힌 느낌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집에서부터 마스크를 쓰고 나와 지하철- 공항- 비행기- 공항- 보건소- 격리 장소 내내 마스크를 쓰는 게 불편했긴 한데 나중에는 점점 마스크가 내 피부의 일부 같아서 무념무상이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자가격리 앱을 받기 전에 일시 정지시켜놨던 한국 번호를 풀었다. 역시 한국.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엄청나게 쉽고 빠르게 해결되었다. 이 번호를 쓴 건 정말 처음 출국했던 이후로 일 년 반 만이라 너무 반가웠다. 개통하자마자 전화해준 친구도 있고. 그리고 정말 체온 재는 일부터 자가격리 앱 받는 일, 검역 신고서 작성하는 일, 그리고 짐을 찾은 후에 타고 갈 차량으로 이동하는 일까지 모든 게 착착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뭐랄까, 비효율에 그러려니 적응하고 살던 나에게 이런 효율은 정말 낯설고 대단해 보였다. 이렇게 수고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감사할 뿐. 입국 전에는 이 모든 과정을 엄청 걱정했는데 막상 인천공항에 내리고 나니 하라는 대로 하니까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 거의 모든 과정이 컨베이어 벨트 수준으로 진행됨. 참,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한국어로 이름을 여러 번 써서 신기했다. 전까진 별생각 없었는데 한국어로 이름 쓰는 게 진짜로 오랜만이더라고. 외국 생활은 정말 이상한 데서까지 새로운 감각을 깨워준다. 또 프랑스는 모든 공적 문서에 일/월/년 순으로 표기하는데 비해 한국은 보통 년/월/일인 경우가 많아서 그것도 신경 썼고, 어느새 숫자 표기도 프랑스 식으로 바뀐 걸 보면서 인간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구나 싶기도 했고.

    떠나기 전에는 익숙했던 모든 게 다 별 거라.

카톡 전송 버튼을 누르면 정말 바로 메시지가 가는 거나 이미지조차 몇 초 만에 보내진 다는 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게시글이 누르자마자 나온다는 거나 모든 게 다 놀라움 투성이다. 그리고 도시의 야경이 이렇게 화려했다는 것 마저도. 그러니 첫 날 밤 만큼 나머지 밤들도 무던히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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