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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Jul 19. 2020

프랑스에 계속 살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

남프랑스 여행이 끝나고 파리에 돌아왔을 때 그런 생각이 나더라

    4박 5일의 남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왔다. 저녁 아홉 시경에 리옹역에 내려 14호선으로 갈아타는데, 샛노란색 여름 원피스를 입고 있는 나와 긴소매의 상의에 긴 바지를 입고 있는 나머지 파리지엔들과의 괴리가 바캉스의 끝을 알려왔다. 지하철 역을 빠져나올 때 온몸을 감싸던 찬 공기에 연신 ‘아, 추워’를 내뱉으며 점점 파리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났다. 

    프랑스 남부는 파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닌 곳이라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온통 영감으로 치환되어 머릿속이 꽉꽉 찼다. 그 순간의 기분은 그때에만 존재하는 것임을 알아서 그 생경한 감정의 파편들이 흩어져버리기 전에 글로 남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집 밖을 나섰다. 원래는 공원에 앉아 글을 쓰려했는데, 가는 길에 평소 좋아하는 분위기의 카페가 있어 충동적으로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좁은 골목에 앉아 펜을 쥐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문장이 뒤죽박죽 엉겨 나왔다. 그렇게 펜이 가는 대로 마구 써 내려가다가 문득, 어디로 휴가를 떠나도 결국에 파리에 돌아올 거라는 사실이 얼마나 안정감을 주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대체 왜 이렇게 프랑스에 사는 걸 좋아하게 된 건지에 대해 한번쯤 글로 남겨봐야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물론 모든 프랑스 유학생들이 이 나라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 나라의 어떤 경향성이 나의 가치관과 너무 잘 맞아서 앞으로 살고 싶은 나라를 고를 수 있다면 이곳이겠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대체 무엇이 그렇게 날 매혹시킨 걸까? 무엇보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나와 다른 것에 관대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다. 여기 애들이 밥먹듯이 하는 말이 ‘Je m’en fou(나 그거 신경 안 써, 상관없어)’다. 타인이 무엇을 하던 내 알바 아니라는 태도, 나와 다른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인드가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나의 선택에 자유를 부여한다. 그건 이 나라 사람들이 유달리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워낙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 살다 보니 사람들을 비교할만한 잣대가 딱히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과 다른 나’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입을 옷을 선택할 때조차 오롯이 나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선택하게 되고 선택에 어떠한 외부의 개입도 없기 때문에 점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일은 자아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고, 나다운 나로 살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임을 깨닫고 있다. 내가 너무 유난인가?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의심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이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하나 더. 파리는 곳곳에 영감이 가득한 도시다.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살든 간에 꾸준히 글을 쓰고 싶은 사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이만한 도시가 없다. 일단 사유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는 환경이 있고(한 달간의 바캉스와 주 35시간 근무 등), 때론 소설 속 한 페이지가 때론 영화 속 한 장면이 펼쳐지는 공간적인 매력도 있다. 워낙 호흡이 느린 나라에 살다 보니까 남는 시간에 인생과 사랑, 꿈, 욕망, 취향 등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나고 자란 나라와는 전혀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이들이 인생을 사는 것을 지켜보며 그만큼 넓어진 세계가 자꾸 창작의 영감을 주고 부지런히 글을 쓰도록 부추긴다. 프랑스에 온 이후로 자주 접하게 되는 ‘산다는 것의 예술(Art de vivre), 혹은 삶의 예술성’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며 그에 대한 얘기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아직 그런 가치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긴 하지만. 

    사실 프랑스에서 큰돈을 벌기는 힘들다. 세금을 많이 내는 편이기도 하고, 파리에 살면 월세가 높고, 생활비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실제로 소득에 메리트를 느껴서 남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직 직장 생활을 시작해보지 않아서 뭐라 단정하긴 이르지만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래도 세금을 내는 만큼 주어지는 혜택이 많고 복지가 만족스럽다고 한다. 예전에 어학원 선생님이 프랑스에서는 애를 낳으면 돈이 많이 드니까 애를 낳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고 해서 참 신기했는데, 3세부터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는 학용품비도 지원해준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자고 여자고 경력 끊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이번에 남부 여행 투어 가이드(프랑스인)에게도 코로나 때문에 관광업 타격이 커서 힘들겠다고 했더니 정부가 지원을 많이 해줘서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대답이 돌아와 놀란 적도 있다. 이동제한이 실시되는 기간 동안 자영업자를 비롯, 수입이 끊긴 사람들에게 실업급여를 아낌없이 제공해주는 것만 봐도 이래서 평소에 세금을 많이 내는구나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으니까.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직접 하나하나 부딪혀 보면서 실제로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오길 기대해본다. 

    마지막은,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인생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는 거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해 많은 걸 놓치고 살았던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삶에 여유가 생겼고, 자연히 결혼이나 출산 등 가족을 만드는 일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여기에는 물론 코로나로 인한 시국이나 타지 생활의 외로움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주말이나 휴가를 함께 보낼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놀 시간이 많아진 만큼 즐겁게 함께 놀 사람이 필요해. 어지러운 시절에 인생의 조각들을 같이 맞춰갈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할 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아직 아무것도 변한 건 없어도, 이렇게 인생의 다른 쪽 문을 자꾸 두드려보게 됐다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변화 중 하나다. 

    어디든 모든 게 완벽한 이상적인 곳은 없다. 이렇게 열심히 프랑스에 살고 싶은 이유를 나열했지만, 이곳에 사는 게 힘들고 버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단점이 감당할 만한 것이고, 장점이 그 모든 단점을 덮을 정도로 클 때 결국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인가 보다 하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물론 쉬운 건 없다. 이만큼의 확신에도 틈만 나면 불안하고 흔들리는 게 사람 마음이고 사서 고생을 한다는 생각도 완전히 이겨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목표 지점에 이르면 꽤 괜찮은 삶이 시작될 거라는 것은 믿음이 있기에 차분히 버텨보기로 한다. 젊을 때 열심히 살아보고 은퇴하고 나면 꼭 바다가 가까운 작은 마을에 정착해야 하니까,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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